[김인철의 야생화]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Trientalis europaea L.
“야생화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야생화 다섯 가지를 꼽는다면 가장 앞자리에 뭐가 올까요?”
오랫동안 꽃을 찾아다니는 걸 지켜본 사람들이 종종 물어봅니다. 무엇이든 순위를 매겨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나온 우문(愚問)이라고 치부하면서도, 내심 손꼽아봅니다. 모든 풀과 나무가 나름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생장하고 소멸하는데 거기에 무슨 서열이 있으랴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어리석어 답을 찾아봅니다. 십수 년 동안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 관리하면서 인공적인 증식·보전 방안을 찾아왔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여전히 ‘보호 대상 1호’인 광릉요강꽃이 누구나 만나고 싶어 하는 ‘1순위 야생화’로 꼽힐 수 있습니다. 물론 희귀성으로 따지면 나도풍란이나 한란을 광릉요강꽃의 앞이나 뒤에 놓아도 손색이 없지만, 야생 상태에선 거의 절멸된 것으로 알려져 아예 논외로 한다면, 두 번째는 아마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는 꽃말을 가진 해오라비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다음은 그 꽃을 만나고 나면 ‘야생화 쫓아다니는 일을 그만둔다’는 뜻의 우스갯말인 ‘화류계(花柳界)를 떠난다’는 말을 낳는 꽃, 털복주머니란이 차지할 듯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위가 바로 참기생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녹음이 짙어가고 계절은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6월 초순, 등줄기에선 벌써부터 땀방울이 흘러내리지만, 산비탈을 오르는 야생화 동호인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저 높은 산등성이에서 황진이가 울고 갈 만큼 곱디고운 순백의 꽃송이가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하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인 만큼 거의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바위틈에 촘촘히 숨어 순백의 꽃을 피우는 참기생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라틴어로 3분의 1피트, 즉 약 10cm를 뜻하는 트리엔탈리스(Trientalis)란 학명에서 알 수 있듯, 전초가 10cm 안팎에 불과한 아주 작은 풀입니다. 일곱 장의 꽃잎과 한 개의 암술, 일곱 개의 수술을 갖춘 꽃의 지름은 1.5~2cm. 달리 말하면 중지(中指)만 한 키에 꽃대마다 약지(藥指) 손톱만 한 흰 꽃을 한 개 또는 두 개씩 달고 서 있는데, 진초록 숲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독차지하고 있는 순백의 꽃은 작지만 단아하고 고졸한 야생화의 전형을 보는 듯 환상적입니다.
참, 처음 참기생꽃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얼마나 예쁘기에 ‘기생’이란 단어를 썼을까, 접두어 ‘참’은 왜 붙었을까 등등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건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저 예전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던 기생처럼 예쁘다는 의미에서 그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입니다. 일본에도 같은 꽃이 있는데,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일본 기생을 떠올려 기생꽃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참’ 자가 붙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대암산에서 자생하며 전초와 꽃의 크기가 작고 잎이 둥글고 짧아 별도의 아종(亞種)으로 분류된 기생꽃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Where is it?
북극의 별을 닮은 꽃이라는 뜻의 ‘아크틱 스타플라워(Arctic Starflower)’란 영어 이름이 말해주듯 세계적으로 러시아와 중국, 유럽, 북아메리카 등 북반구 고위도 지방에 널리 분포한다. 우리나라 북방계 식물의 고향이랄 수 있는 백두산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설악산과 태백산, 지리산과 가야산 등의 높은 곳에서 드물게 자생한다. 기생꽃은 대암산에만 분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