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야생화] 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 학명은 Prunus mume Siebold & Zucc.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 자락 덮여도
매화 한 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 도종환의 ‘홍매화’에서
정초가 지나면서 계절은 겨울의 한복판으로 접어들지만, ‘꽃쟁이’들의 마음은 벌써 춘삼월이 코앞에 다가온 듯 들뜨기 시작합니다. 지구온난화 등의 여파로 시절을 착각한 복수초나 노루귀 등의 야생화들이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한 달여나 이르게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입니다. 그중 엄동설한에 피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꽃이 있습니다. 바로 매화(梅花)입니다. 눈 속에 피는 꽃, 즉 설중매(雪中梅)의 그림에 익숙하고, ‘매화는 일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등의 찬사에 너무 길들어서 매화란 으레 한겨울에 피는 꽃이란 선입견이 강하게 박혀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실제 ‘따듯한 남쪽 나라’ 제주도에선 1월이면 팝콘 터지듯 가볍게 터진 하얀 매화꽃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뭍에서도 최근 수년간 이상 난동으로 경남 양산 통도사의 유명한 홍매(紅梅)인 자장매(慈藏梅)가 1월부터 홍색 꽃을 피워 많은 인파를 불러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남 순천에는 아예 음력 12월이면 피기 시작해, 음력 섣달의 한자 말인 납월(臘月)을 붙여 ‘납월홍매화’란 이름으로 불리는 매실나무가 있습니다. 금전산 금둔사 경내에 있는 홍매화 6그루가 그 주인공으로, 해마다 양력 1월 말부터 3월까지 개화해 남녘의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는 말을 듣습니다. 30여 년 전 인근 낙안읍성에 있는 600년 된 홍매화의 씨를 받아다 키운 것인데, 지금은 어미 납월매가 고사해 이 6그루가 마지막 남은 토종 납월매일 것이라고 합니다.
여하튼 납월매가 됐든, 수령 360여 년의 자장매, 또는 뜻밖에 핀 동네 매화이건 정월은 추위가 뼛속 깊이 스며들수록 그 향이 코를 찌를 듯 짙어진다는 매화꽃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이른바 ‘탐매(探梅)’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그리고 그 여행길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쉬 끝나는 게 아니라, 봄철 내내 이어집니다.
Where is it?
매실나무가 국내에 들어온 건 약 2000년 전. ‘정원수로 심기 위해서’라는 게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의 설명이다. 당연히 오래된 매실나무가 많고, 이른바 유명한 고매(古梅)를 찾아다니며 즐기는 탐매 순례도 오래됐다. 수령 600년을 넘었다는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仙巖梅),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 구례 화엄사의 흑매(黑梅) 등이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매실나무다. 통도사엔 자장매 외에도 이름난 매실나무가 2그루 있는데, 일주문에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만첩홍매와 분홍매가 그것이다. 유서 깊은 고불매와 선암매는 담양 계당매(溪堂梅)와 전남대 대명매(大明梅), 고흥 수양매(水楊梅)와 더불어 ‘호남 5매’란 명성을 얻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 김해의 와룡백매(臥龍白梅)와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栗谷梅), 산청의 남명매(南冥梅) 등 수령 100년 이상 된 고매가 전국에 200여 그루 넘게 산재해 탐매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최근에는 열매인 매실 수확 등을 목적으로 심은 대규모 매실나무들의 연륜이 쌓여 봄마다 농원 일대가 거대한 매화동산으로 변모하면서 수많은 인파가 찾는 매화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전남 광양과 경남 양산의 매화 축제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