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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산책] 통곡하고 싶은 계절, 사무치게 그리운 임을 닮은 꽃 '둥근잎꿩의비름'

기사입력 2014-11-18 08:52

▲둥근잎꿩의비름 (사진=야생화 칼럼니스트 김인철)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불면의 고통을 겪는다면 주저하지 말고 경북 청송으로 가라고 권합니다. 사통팔달 고속도로가 뚫린 요즘에도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왕복 2차선 지방도 등을 한 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 하지만 옛 도로변에 줄지어 늘어선 과수원, 과수원마다 빨갛게 물들어가는 사과 향을 맡아보고, 또 주왕산 천길 바위 절벽 곳곳에서 진홍색으로 피어나는 둥근잎꿩의비름과 눈 맞춤 하는 사이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오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로부터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지만, 한 송이 야생화가 마음의 가난을 구제할 수 있기도 합니다. 자연의 힘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둥근잎꿩의비름. 매년 9~10월 줄기 끝에 우산 모양으로 빽빽하게 달리는 홍자색 꽃이 절벽 아래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환상적으로 아름답지만, 정작 십자 모양으로 마주 달리는 동그란 잎이 꽃 못지않게 예쁘고 개체의 특장을 말해준다고 해서 식물 이름의 앞자리(‘둥근잎’)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학명 Hylotelephium ussuriense (Kom.) H. Ohba.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사진=야생화 칼럼니스트 김인철)

몇 해 전 ‘통곡하고 싶은 가을’이란 한 방송 진행자의 가을 찬사에 매료되어 있던 때 이 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곤 ‘통곡하고 싶은 야생화’라는 나만의 별칭으로 마음속에 저장했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척박한 바위 틈새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무엇을 자양분 삼아 짙

은 홍자색 꽃을 피워내는지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로웠습니다.

이름 그대로 잎이 둥글고 도톰한 게 수분을 다량 저장해 긴 가뭄도 충분히 견딜 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가뭄은 버틸 수 있으나 인간들의 어리석은 탐욕은 이겨내기가 쉽지 않아, 등산로 주변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는 쉽게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처음 주왕산에서 발견된 뒤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줄 알았는데 이후 연해주 및 캄차카에도 같은 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인근 팔각산 등지서도 자생지가 확인되면서 2012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2급에서 해제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한 민간 식물원에서 종자를 따다 번식하는 데 성공해, 수천 포기를 주왕산에 인공 증식하기도 했습니다.

꿩의비름, 큰꿩의비름, 자주꿩의비름, 세잎꿩의비름이 같은 돌나물과의 비슷한 식물입니다.


Where is it?

경북 청송의 주왕산과 영덕의 팔각산은 야생화 애호가들에겐 성지와 같은 자생지다. 주왕산의 경우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상의주차장을 출발해 대전사를 거쳐 제1폭포로 오르면서 등산로 양편 절벽에서 만날 수 있지만, 꽃과의 거리가 멀고 높아 사진 촬영은 쉽지 않다.

해서 처음부터 절골 코스를 택하는 게 낫다. 게다가 절골 코스의 경우 차로 2~3분 거리에 유명한 ‘주산지(注山池)’(사진)가 자리하고 있어 인근에서 숙박했거나 이른 새벽 도착한 경우, 본격적인 꽃 탐사에 앞서 주산지를 들르면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배경으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몽환적인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이어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 절골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골계곡으로 들어서면 된다. 5분 정도 오르면 왼편에 높고 장대한 절벽이 나타나는데,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둥근잎꿩의비름이 꽃만큼이나 예쁜 잎을 가지런히 늘어뜨린 채 홍자색 꽃을 피운 걸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 계곡이 끝나는 지점까지 1시간여를 천천히 걸으면서 절벽 곳곳을 살피면 된다.

▲경상북도 청송군에 위치한 주산지 (사진=야생화 칼럼니스트 김인철)

경북 영덕의 팔각산도 꼭 가봐야 할 자생지. 영덕군 달산면 옥산리 옥계계곡유원지 관리사무소나 영덕산마루펜션을 내비게이션에 치고 가면 된다. 지금은 폐쇄된 관리사무소 옆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 철제 다리를 건너 20분 정도 팔각산을 오르다 오른쪽 산성계곡 쪽으로 빠지면 된다. 계곡 양편 절벽 여기저기 둥근잎꿩의비름이 풍성하게 꽃 피운 것을 만날 수 있다.

▲야생화 칼럼니스트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김인철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 산책(ickim.blog.seoul.co.kr)'을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푸른행복)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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