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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스산한 가을 향이 강하게 묻어나는 꽃 ‘가는잎향유’!

기사입력 2016-09-29 08:56

꿀풀과의 한해살이풀., 학명은 Elsholtzia angustifolia (Loes.) Kitag

자연에 다가갈수록 오감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만추의 계절 무르익은 오곡백과는 우리의 미각을 자극합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은 회색의 건물들에 가로막힌 시각을 되살려 줍니다.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TV와 컴퓨터 등 각종 전자 음향에 지친 청각에 청량한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아침저녁 피부를 스치는 선선한 가을바람은 여름 무더위에 무뎌진 촉각을 곤두서게 합니다. 그리고 저 높은 바위 절벽에서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피어난 ‘가는잎향유’는 그 어떤 허브 식물에 못지않은 강한 자연의 향으로 인공의 냄새에 지치고 둔화한 우리의 후각을 다시 일으켜 줍니다.

가을의 스산함을 포개고 또 포개서 농축한 듯 강하디강한 자연의 허브 향을 풍기는 꽃, 계절의 변화를 후각으로 느끼게 하는 꽃, 바로 가는잎향유입니다. 가을이 깊어 감을 절감하는 ‘시월의 어느 날’, 바로 그 어느 날을 닮은 가장 가을다운 꽃이 가는잎향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 길 낭떠러지 끝에 똬리를 틀고 앉아 온갖 세파에서 벗어난 듯 세상을 굽어보는 모습은 한여름 남덕유산 정상에서 만났던 솔나리와 참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툭하면 생태계를 해하려 드는 인간의 범접을 꺼리는 듯, 절벽 끝에 달라붙어 굽이굽이 펼쳐지는 산줄기를 내려다보는 가는잎향유 군락은 누구든 한 번 보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가을의 향 또한 짙어집니다. 해서 사진을 담는 내내 눈이 즐겁고 코가 호강을 하게 만드는 꽃이 바로 가는잎향유이기도 합니다. 폐부까지 파고들 듯 강렬한 천연의 향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산자락에 쌓이는 낙엽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가는잎향유의 젓가락처럼 가는 잎도 연두색에서 홍갈색으로 변하며 손을 대기만 해도 부서질 듯 바싹 말라 가지만, 꽃과 잎 등 높이 50cm 정도의 전초에선 박하 향보다도 진한 천연의 향이 우러나와 가슴속으로 파고듭니다.

그런데 가는잎향유의 깊고 강한 허브 향에 취하고 즐기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가는잎향유 자생지에는 늘 숱한 벌과 나비들이 몰려들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황홀한 만추의 성찬을 즐깁니다. 그러는 사이 야생화 애호가들은 가는잎향유의 자줏빛 꽃에 취해서, 꽃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벌·나비들의 바쁜 날갯짓에 반해서 넋을 잃고 연신 셔터를 눌러 댑니다.

꽃은 물론 깻잎 같은 잎과 줄기가 기름을 머금은 듯 반질반질 윤기가 돌 뿐 아니라 전초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 해서 꽃향유(香)라 부르는 꿀풀과 향유속 식물의 하나입니다. 마주나는 이파리가 젓가락처럼 길고 가늘다고 해서 가는잎향유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아직은 멸종 위기 식물이 아니지만, 서식지가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어 각별히 신경 써서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우리의 토종 식물 자산입니다.

Where is it?

조령산·월악산·속리산 등 충청북도 보은군과 제천시, 경상북도 문경시를 지나는 산악 지대에 자생한다. 특히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주로 자리 잡고 있어,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간 위험한 게 아니어서 야생화 사진 작업에 익숙한 전문가들도 아주 조심하며 다가서는 꽃의 하나다. 문경 새재로 유명한 조령산 절벽 곳곳에 자생하는 가는잎향유가 전망 좋고 꽃 무더기도 풍성해 인기다. 몇 해 전 문경 새재 길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내기 전에는 큰길을 따라 연이어 무더기로 자랐는데, 지금도 새재 길 절개지 일부에서만 만날 수 있다.

>>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 (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푸른 행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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