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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나만의 아지트 대공개] 늘그막에 얻은 내방

기사입력 2016-09-02 14:14

필자 집 작은방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의 아지트이다.

필자는 결혼 후 시댁에서 살다가 아이가 4세 되던 해 분가했다. 서울 장충동 시댁이 저택 같은 큰 집이었지만 독립해서 남편과 아들과 셋이서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서울 변두리 방 2개짜리 작은 아파트에 망설임 없이 너무나 행복한 마음으로 이사했었다.

시어른 참견 없이 필자가 주체가 되어 가정을 꾸린다는 것에 매우 설레고 기대감에 찼으며 비로소 자기 살림을 하는 어른이 된 것 같아 대견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실은 친정 가까이 오느라 이 아파트를 선택했지만 이사해 보니 주위에 우리 아들 또래의 좋은 친구도 여럿이고 무엇보다도 북한산 국립공원 밑이라 공기 좋고 환경이 좋아 대만족이었다.

아이가 크면 넓은 집으로 옮길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뜻하지 않게 남편이 보증을 서서 재산을 몽땅 잃는 사건이 있었으므로 그래서 넓은 곳으로 이사하려는 계획은 사라져버렸다. 없어진 재산이 아깝긴 했지만 지금 사는 집에 불만이 없어서 그런대로 지냈다.

방 2개의 작은 아파트긴 해도 거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자연은 집이 작다는 생각을 잊게 해 주기에 충분했으니 아마도 필자는 욕심이 없는 사람임에 분명한 것 같다.

◇내 방이 생겼다-

큰방은 부부가 썼고 작은 방은 아들 방으로 꾸몄다. 그 작은 방에서 무난하게 잘 자란 아들이 5년 전 결혼해 나가서 방이 비었다. 미술을 전공했던 아들은 책과 미술도구 이젤과 아그리파까지 다 두고 떠났다. 물론 쓰던 컴퓨터도 그대로 남았다.

그때부터 필자의 시니어 글쓰기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들 바라기였던 엄마가 걱정되었든지 아들은 심심할 때 하라며 컴퓨터 사용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컴맹이었지만 임자 없는 컴퓨터를 자꾸만 만지다 보니 어느 정도 손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인터넷 세상은 참으로 무궁무진하고 즐거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저 살림하고 아이 키우기만 하던 필자에게 인터넷 메일로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시니어라는 단어도 그때 알게 되었고 어느 시니어 포털 사이트에서 초대한 대로 찾아가서 필자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써서 송고한 후 채택되면 원고료를 받으니 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쓴 글의 대가를 받는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글쓰기는 그리 어렵진 않았다. 누구라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문학소년 문학소녀의 꿈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이다. 고교 시절 백일장에서 입상해서 제법 상을 탔으므로 필자도 문학의 꿈을 가졌었는데 대학생이 되면서 재미있는 다른 일이 많았기에 문학소녀의 꿈은 멀리멀리 사라져 버렸으니 우습다.

아들이 떠난 작은 방에서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자서전도 한 권 출간하게 되어 남편과 아들, 며느리가 무척 좋아했다. 글 쓰는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니 기분 좋고 힘이 났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쓸 때면 남편도 방해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들이 쓰던 이 작은 방은 누구도 넘보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작은 창문이 있는 이 방에서 아들의 옷을 넣었던 작은 옷장과 아들이 쓰던 침대, 아들의 책장을 그대로 필자가 사용했고 자연히 안방과는 이별하게 되었는데 이 나이가 되어선지 남편도 혼자 안방 차지하게 되어서 만족하는 눈치였다. 이 작은 방에서 아들이 남긴 책이나 미술 도구를 보며 귀엽던 어린 시절을 추억해 보기도 하고 살아온 내 인생도 돌아본다. 그리고 많은 생각과 글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필자에게 필수품이 된 컴퓨터와 침대, 작은 옷장과 책장이 덩그런 이 작은 방은 기막힌 나만의 아지트라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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