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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L 칼럼] 어버이께 드린 효도 자식이 갚아준다

기사입력 2016-06-27 08:08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1869년 작 ‘채씨 효행도’의 일부. 병든 어버이의 대변을 맛보는 효자를 묘사했다.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1869년 작 ‘채씨 효행도’의 일부. 병든 어버이의 대변을 맛보는 효자를 묘사했다.

우리말을 하는 한, 그 우리말에 한자어가 들어 있는 한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새기려면 한자의 어원부터 따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자는 사물의 모양을 본떠 그린 상형(象形)을 비롯해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 등 여섯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이른바 육서(六書)입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효도를 말할 때 쓰이는 孝라는 글자는 老[늙을 로]와 子[아들 자]를 합쳐서 만든 회의자라고 합니다. 글자 자체에 아들(그러니까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긴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효도를 강조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습니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받은 10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자녀 된 사람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계명은 약속이 붙어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이것은 신약성서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요즘에 말하는 효는 봉양을 잘하는 것에 불과하다. 개나 말들도 집안에서 봉양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개나 말들과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인간의 본성은 아무리 시대가 바뀐다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던데, 공자의 시대에도 벌써 이렇게 ‘요즘 세태’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효도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효의 전통이 무너진 지 오래이고 효도를 하려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게 된 세상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효도는커녕 부모를 버리는 걸 넘어 살부 살모의 존속살해 범죄가 비일비재한 현실입니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5월 1일부로 강제적인 ‘효도법’이 발효됐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을 나쁘게 매겨 집을 사거나 도서관을 이용할 때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부모가 불효자식을 고소할 수 있고 양로원이나 요양원 노인들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양로원·요양원 측이 장기간 부모를 방기하는 자식들에게 찾아오라고 연락하는 것도 의무화했습니다.

베이징(北京)과 광둥(廣東)성 장쑤(江蘇)성 등은 이미 2013년부터 노인권익보호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정기적으로 찾아뵙지 않고 부모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식들을 고소하거나 정부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대 국회에 효도법(이른바 ‘불효자 방지법’) 법안 2건이 제출됐다가 국회 폐회와 더불어 자동 폐기됐습니다. 부모를 잘 모시는 자녀에게는 상속세 증여세를 경감해주고, 재산을 증여받은 자식이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그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현행 민법 556조는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기로 약속한 경우 자녀가 부모에게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증여를 해제(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증여를 이미 이행한 때는 증여를 해제(취소)할 수 없다’(민법 558조)는 조건도 달려 있지요.

하지만 사실상 부모가 자녀의 범죄·패륜 행위나 불효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법원이 이미 작성되어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효도계약서 등의 서면 계약을 중시하는 것도 이 같은 현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의된 개정안은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물론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를 할 경우까지 포함해서, 효도계약서 등의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미 증여한 재산도 전부 회수할 수 있도록 보완했는데, 사실상 민법 558조를 없애야 한다는 취지인 셈입니다.

또 형법상의 존속폭행죄에서 피해자가 원치 않을 때는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한 반의사불벌(反意思不罰) 조항을 삭제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정서상 부모가 자식들에게 폭행을 당하더라도 처벌을 원하는 경우는 드물어 현행 법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습니다.

증여 해제권 행사 기간도 현행 6개월에서 ‘해제 원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1년 또는 증여한 날부터 5년’으로 늘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은 부모에 대한 배신이나 배은망덕한 행위가 있을 때 부모가 증여한 재산을 1년 이내에 돌려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답니다.

이런 ‘불효자 방지법’은 내년이 대선의 해이므로 노인층의 표를 겨냥한 정치권이 다시 국회에 법안을 제출해 더 활발하게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효도법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느냐,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거지요. 땅 덩어리가 넓은 중국의 경우 부모를 자주 찾아뵙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가 봅니다. 비행기나 열차 교통비 마련은 둘째 치고, 며칠 이상씩 휴가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비를 받고 대신 찾아가주는 ‘부모님 방문 서비스’라는 신종 사업이 생겨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영리하니 새 법이 발효되면 이런 것들보다 한층 더 기발한 ‘효도사업’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선 영조 때의 효자 정방(鄭枋)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효자가’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전남 담양에 살았던 전우창(全禹昌)의 효행을 읊은 노래입니다. 그 가사 중 “상분도천(嘗糞禱天) 못 다하야/단지용혈(斷指用血) 하는구나”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운명하려 하자 병세를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고 하늘에 빌면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드렸다는 내용입니다.

옛 글에 나타난 효행 중 대표적인 것은 혼정신성(昏定晨省), 저녁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엔 문안(問安)을 드리고, 동온하정(冬溫夏凊), 겨울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엔 시원하게 해드리면서 병이 나시면 상분도천, 단지용혈로 간병을 하다가 돌아가시면 삼년시묘(三年侍墓)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그냥 정성에서 우러나고 자발적인 효심으로만 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고 배우고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孝는 본받는다는 ‘效(효)’이면서 가르친다는 ‘敎(교)’일 수 있습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걸 내 자식에게 보여줘야 나도 나중에 그렇게 효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부모가 온 효자가 돼야 자식이 반 효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실제로 그렇게 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글을 쓰기가 어려운 것은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면 글에 실속이 없고 거짓과 과장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겨우 겨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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