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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서 했던 일

기사입력 2017-06-07 09:37

▲ 다락방 이야기(박혜경 동년기자)
▲ 다락방 이야기(박혜경 동년기자)
친한 친구가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 필자를 초대했다. 주변 친구들이 거의 아파트에 살고 있어 주택으로 이사한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오랜만에 아파트 아닌 집을 구경하려니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아담하고 깨끗한 예쁜 집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그 집에서 다락방을 볼 수 있었다. 예전 필자가 알던 그런 형태는 아니었지만, 복층에 만든 다락방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다락방을 알까? 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던 다락방은 세모꼴의 천장에 똑바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의 방이었다.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까지 한옥에서만 살았다. 한옥은 대체로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대청마루가 있었고 안방 옆쪽으로는 부엌, 부엌 옆으로는 작은방이 붙어 있었다.

부엌 천장 위로는 삼각형의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다락방이었으며 다락으로 통하는 문은 안방 벽에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작은 여닫이문을 열면 네다섯 개의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야트막한 다락방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다락방은 주로 안 쓰는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어서 좀 어둡기도 하고 어수선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은 아늑했고 식구들이 별로 찾지 않아, 필자만의 사색에 잠기기에 딱 적합한 곳이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 혼자만 있고 싶거나 누구 몰래 좀 야한 소설이라도 읽어야 할 때면 다락방을 찾았다. 시험공부도 그곳에서 하면 왠지 더 잘되는 것 같았다.

필자는 다락에서 주로 한자 공부를 많이 했다. 아늑한 공간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개다리소반에 연습장을 펴놓고 빈 곳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자를 써가며 익혔는데 다락방에서 하면 공부가 좀 더 잘되는 기분이 들었다. 필자의 학창 시절엔 한문 시간이 있다가 없다가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한자를 배웠는데, 2학년 때는 한문시간이 없어졌다. 그리고 3학년이 되니 또다시 한문 시간이 생겨 한자를 공부해야만 했다.

그때는 한자가 너무 어려워 한문시간이 없어지면 환호하고 다시 생기면 너무 싫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한자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필자가 신문에 나오는 한자를 그나마 읽을 수 있는 것도 그때 익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문시간이 없어졌다 생겼다 해서 한자를 쓰는 것은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겨우 읽을 수만 있는 것이다. 당시에 한문시간이 계속 있었더라면 지금보다는 한문 읽기와 쓰기가 더 수월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하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필자 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필자 아들은 신문에 나오는 쉬운 한자도 못 읽는다. 정말 충격이었다. 한심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는데 주변에 똑똑하다는 아이들도 하나같이 한자를 읽지 못했다. 필자 아들만 그런 게 아니니 마음이 놓이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교육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 옛날 필자가 중학생일 때 다락방에서 연습장이 까매질 때까지 쓰고 또 쓰면서 한자 공부를 했던 때가 자랑스럽고 고마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친구네 복층 다락방은 예전 다락방처럼 낮지 않아 허리를 구부릴 필요가 없었다. 어둡지도 않았고 치장이 된 예쁜 다락방이었다. 오랜만에 다락이라는 공간을 보니 중학생 때 나지막한 공간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때가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필자만의 공간이 필요할 때 옛날 한옥 부엌 천장 쪽에 있던 그 세모꼴 다락방을 즐겨 찾았던 그 시절이 오늘따라 더욱 생각나고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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