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인해 느리게 살고 있는데 웬 청산도까지 가냐는 친구를 설득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곳’ 해남으로 달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우리나라의 남쪽 기점을 해남현으로 잡고 있다. 그리고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 끝에서 서울까지 천 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이천 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했다.
주막의 바다 감상
청산도는 해남에서 배로 들어간다. 청산도행 배에 차량을 싣고 승선할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은 차량 운전자와 다른 승객들이 분리되어 매표하고 승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줄어든 지금, 은퇴자의 조용한 평일 여행이 오히려 청산도의 잔잔함과 잘 어울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배에 올랐다.
청산도는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한 서편제(1993년)의 촬영지다. 푸른 산 푸른 바다 황톳길이 어우러진 곳에서, 소리꾼과 의붓딸 송화가 진도아리랑에 맞춰 어깨춤을 추면서 5분 30초짜리 롱 테이크 장면을 연출했다.
이런 ‘느림의 쉼터’인 청산도에는 차가 별로 없다. 차가 필요하지 않아서다. 차로 다니면 이 풍경과 바람, 소리들을 가슴과 귀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촬영지에서 신흥리로 내려가 돌담마을을 걷다가 다시 아리랑을 부르며 몽돌해변으로 넘어가려면 목젖을 적시고 가야 한다. 촬영지에 있는 주막에서 바다를 감상하며 청산도 전통막걸리에 꽃파래해물전을 곁들이면 금세 불콰해지지만 오르는 취기는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달래준다. 약간 신맛이 나는 막걸리도 산뜻하게 깨서 이후 일정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
길옆에 초분이 보였다. 시신을 이엉으로 덮어두었다가 2~3년 후 뼈를 골라 땅에 묻는 일종의 풀무덤이다. 고기잡이 나간 사이 부모가 죽으면 바로 돌아와 장례를 치를 수 없었기에 어촌에서 생긴 일종의 이중 장례 풍습이라니, 고단했을 어촌의 삶이 와 닿는다.
최고의 전망, 범바위
초분을 지나 청산도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범바위 전망대를 찾았다. 먼 옛날, 신선에게서 십장생에 들어갈 동물들을 소집하라는 명을 받은 범이 자신이 그 명단에 없다는 사실에 삐쳐서 사슴을 죽였다. 그래서 신선의 노여움을 샀고, 그 범이 바위로 변한 곳이 바로 범바위다. 자연 상태에서 음이온이 가장 많이 방출된다는 이곳의 이름은 범(호랑이)+유(有)+다(多)라고 한다. 그 이름을 붙인 그 노력이 참 가상하다. 이곳 범바위 부근에는 자철석이 많아 자력 작용이 활발해 실제로 나침반들이 엉뚱한 곳을 가리킨다. 그야말로 ‘자기장을 뿜어내는 신비의 섬 청산도’인데 근육의 적절한 이완과 수축을 유도하고 뇌의 특정 회로를 제어해 행복한 마음이 들도록 만든단다.
나이가 들면서 일출보다 일몰을 즐기게 되었다. 일출은 새벽에 움직이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몇 번 보니 감흥도 덜하다. 그런데 일몰은 아무 때나 친숙하게 볼 수 있지만 찬찬히 느끼면서 본 지는 오래되었다. 그래서 '노을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유명한 청송해변을 찾았다. 해변 옆에 같이 앉았던 젊은이들은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마자 사진 몇 장을 찍고 자리를 떴다. 안 보이던 해가 수평선 너머에서 나오는 일출보다 덜 반갑고 그래서 감탄사도 안 나온단다. 역시 젊은이다웠다. 노을은 ‘해가 뜨거나 질 무렵 하늘이 햇볕에 물들어 벌겋게 보이는 현상’이다. 광학적인 원리가 똑같기 때문에 사진만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일출은 빛이 뻗어 나오는 형상인 반면 일몰은 빛이 수렴되는 형상이라 부드러운 느낌이란다. 그래서일까. 일몰은 일출 못지않게 빨갛지만 뜨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일출은 해가 커다랗게 보이다가 작아지지만 계속 하늘 위에 떠 있다. 그러나 일몰은 그야말로 그냥 '꼴까닥' 넘어간다. 참 빠르게 사라진다. 우리네가 가는 순간도 마찬가지이리라. 꽃도 사람도 해가 질 때처럼만 곱게 가면 좋겠다.
‘느리게 걷기’는 느긋하게 걸으며 상념을 떨치거나 일념에 빠져드는 행위다. 하지만 그 행위조차 개의치 않는 게 걷기의 궁극적 경지라고 한다. 그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청산도 바닷가를 느리게 걸으면서 그렇게 ‘코로나 갑갑 생활’을 잠시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