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마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모습은 어느새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 되고 말았다. 경제가 무한히 성장할 것 같고,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사회가 활력이 넘치던 그 시절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 요긴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성공과 넉넉해진 월급을 가족 친척들에게 자랑할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식구들의 만남이 그리 신나지만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가족은 해체되고 1인 가구는 늘어만 가는 추세다.
많은 가정이 적당한 시간에 식당에서 만나 밥 먹는 것으로 명절 모임을 대신하고 있다. 또 모임의 장소가 요양원으로 대체되는 모습도 보인다. 어쩌면 미래 명절 모임의 장소는 노인들만 침대에 누운 요양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쯤 되고 보니 ‘효(孝)’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우리 사회에 효라는 사상이 남아 있기는 한 것일까? 하긴 효도를 하고 싶어도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긴 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날로 바빠지는 세상에서 치매에 걸리거나 병으로 누워 계신 부모를 간호하며 제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요양원은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유일한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효라는 이데올로기가 이미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낡은 사상일 수도 있다. 과거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던 시절에 개인의 생존과 복지를 모두 가족끼리 감당했던 만큼 그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대가 필요했고 그것을 집약한 사상이 바로 효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효라는 관념도 절대 진리가 아니라 시대가 낳은 산물이었을 것같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개인의 생존이나 복지를 가족들이 담보해줄 수 없는 요즘 시대엔 효라는 고정관념도 어떤 새로운 형태의 개념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같다.
추석이 지나면서 조금 선선해졌다. 곧 겨울이 다가오겠지... 그나마 삶에 에너지를 주던 명절마저 이렇게 퇴색해버리니 사는 즐거움이 반감된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명절마다 해외여행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이제사 조금 알 듯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