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 세상] 우주를 구하는 대신 가족과 이웃을 지킨다
최근 들어 우리에게도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슈퍼히어로들의 면면을 보면, 익숙하게 보아온 미국 마블코믹스 히어로들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이 다르고, 이런 색다른 존재들은 왜 탄생한 걸까.

“아버지 뒤에 바짝 숨어 있어.” 영화 ‘하이파이브’에서 태권소녀 완서(이재인)에게 그의 아빠(오정세)는 이렇게 말한다. 태권도 관장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실력으로는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수십 명의 적을 물리칠 것 같지 않다. 겁먹은 듯하지만, 딸을 지켜야 한다는 결의가 그의 얼굴에 가득하다.
‘하이파이브’, 초능력을 이기는 부성애
사실 딸 완서는 초능력자의 심장을 이식받은 후 엄청난 초능력이 생겼다. 달려서 오토바이도 따라잡고, 점프하면 건물 위로 뛰어오르는 괴력을 가졌다. 수십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지만, 딸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아버지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듯 아빠 몰래 적들을 하나하나 때려눕힌다. 자신의 능력인 줄 알고 우쭐해하는 아빠의 모습이 코믹하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그 부성애가 그저 웃음으로만 끝나는 건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 딸이 위급해지자 아빠는 초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하이파이브’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이른바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독특한 매력을 잘 보여준다. 초능력보다 더 센 건 아빠와 딸의 끈끈한 관계에서 나오는 기적 같은 힘이다.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건물 하나를 주먹 한 방에 무너뜨리는 괴력을 자랑할 때, 우리 슈퍼히어로는 힘을 드러내 과시하지 않는다. 지구를 구하고 나아가 우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이 동분서주할 때, 우리 슈퍼히어로들은 조용히 가족과 이웃, 친구를 지키려 한다.

예를 들어 마블의 ‘어벤져스’에서 한 팀으로 모인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헐크, 블랙위도우 같은 슈퍼히어로는 지구, 나아가 우주를 끝장내려는 타노스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하이파이브’에서 초능력자의 심장·폐·신장·간·각막을 각각 이식받고 엄청난 초능력이 생긴 한국형 어벤져스(?)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장기이식을 받고 초능력이 생긴 사이비 교주가 그들의 능력을 빼앗으려 하자 서로를 지키려 뭉친다.
이런 특성은 ‘하이파이브’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한국 슈퍼히어로물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강풀 원작의 디즈니플러스 ‘무빙’에서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재생 능력을 가진 장주원(류승룡), 초감각을 가진 이미현(한효주), 비행 능력을 가진 김두식(조인성), 괴력을 가진 이재만(김성균) 같은 초능력자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려 한다. 그건 이들이 초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국가기관에 이용당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라는 건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초능력을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자식들이 자신들처럼 국가기관에 이용당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숨겨왔던 능력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다시 쓰이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의 슈퍼히어로들은 우주를 구하는 일보다 가족을 구하는 일이 더 우선인 걸까.

더욱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
가족 서사 중심의 슈퍼히어로물이 나오게 된 건, 제작비나 기술 문제로 이를 영상으로 구현하기 어려웠던 시절 스스로 상상력을 제한했던 데서 비롯된 면도 있다. 할리우드가 슈퍼맨을 등장시켜 심지어 지구를 거꾸로 돌려 시간을 되돌리는 어마어마한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만한 제작 규모와 기술적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네 K-콘텐츠도 이제 이러한 상상을 구현해내는 데 문제가 없을 만큼 성장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족 서사 중심의 슈퍼히어물이 나온다는 건, 우리의 진짜 관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우주를 구하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다. 치열한 생존 문제들이 당장 눈앞에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빙’의 핵심 갈등 요인은 ‘남북 분단 상황’이다. 무기를 보유해 힘의 우위를 가져가려 경쟁하는 것처럼, 남과 북은 각자 초능력자들을 모아 전투에 투입하거나 스파이 활동에 활용한다.

즉 ‘무빙’의 상상력은 분단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그 위기감을 바탕으로 펼쳐진 것으로,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를 담고 있다. 초능력자들은 놀랍게도 그 능력을 착취하려는 국가권력에 대항해 자신과 가족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쓴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 ‘염력’에 등장하는 은행 경비원 석헌(류승룡)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물건을 움직이고 공중 부양을 하는 등의 능력이 생긴 그가 맞서 싸우는 상대는 재개발을 하기 위해 주민들을 몰아내려는 용역 깡패들이다. 생계가 막막한 이 슈퍼히어로는 기득권에 의지해 삶의 터전마저 빼앗으려는 자들과 맞서 싸운다.
‘하이파이브’에서 한국형 어벤져스가 맞서 싸우는 빌런이 사이비 교주라는 사실도 이러한 맥락과 연결된다. 사이비 교주 영춘(신구, 박진영)은 더 이상 갈 데 없이 몸도 마음도 병들어 비이성적인 것에라도 매달리려는 이들의 간절함을 이용하는 악당이다. 사람들의 기운을 남김없이 흡수해 점점 젊어지는 교주 영춘의 능력은 꺼져가는 타인의 생명력까지 남김없이 흡수해 부를 쌓는 사이비의 폐해를 꼬집는다.

그렇게 젊음을 앗아간 영춘은 초능력을 갖게 된 이들을 찾아내 나머지 장기를 이식받아 그들의 능력마저 흡수하려 한다. 이에 맞서 ‘하이파이브’의 어벤져스는 유사 가족처럼 뭉친 서로와 가족을 지키고, 나아가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들을 지키려 한다.
먼 우주보다 가까운 눈앞의 현실을 지켜내려는 한국형 슈퍼히어로는 어쩌다 능력을 갖게 된 초능력자들이며, 사실상 ‘서민의 대변자’다. 이들의 직업이 그걸 말해준다. ‘무빙’의 장주원은 치킨집 사장이고, 이미현은 돈가스집을 운영한다. ‘하이파이브’의 다섯 히어로는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아빠를 둔 평범한 여고생, 표절 시비로 악플을 달고 사는 작가 지망생, 야쿠르트 아줌마, 공사판 작업반장, 꿈도 없는 힙스터 백수다.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인물이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친근한 사람들이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얼굴이다.

돈, 젊음, 권력이라는 빌런의 욕망
슈퍼히어로의 탄생은 그 반대급부로서의 불의를 상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불의는 사회의 엇나간 욕망을 담는다. 예를 들어 ‘무빙’의 불의는 국가기관의 폭력이고, ‘염력’의 불의는 부를 축적하려는 자들의 부당하고 폭력적인 재개발이다. ‘하이파이브’는 힘없는 서민들을 병들게 만드는 사이비 종교가 불의인데, 교주 영춘의 비뚤어진 욕망으로 생겨난다. 그 욕망은 먼저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건드려 부를 축적했지만, 나이 들면서 제아무리 부자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노화 앞에서 영춘이 젊음을 욕망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장기이식을 통해 젊음까지 갖게 된 그는 이제 더 많은 능력을 빼앗아 모두를 발아래 놓는 신적인 권력을 꿈꾼다.
돈과 젊음, 그리고 권력. 이건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가 욕망하는 가장 현실적인 것들이다. 누구나 부유해지고 싶고, 젊게 살고 싶으며, 나아가 자신이 힘을 갖기를 원한다. 그 욕망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어떤 선을 넘어 타인의 돈과 젊음, 그리고 자존감을 빼앗을 때 사회적인 문제들이 발생한다.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은 그 사회악과 맞서 균형을 잃어버린 사회의 한 축을 떠받치려 한다. 당장의 생존이 중요한 한국적인 상황과 거기서 비롯된 욕망의 부딪침이 영웅을 탄생시킨다.

주목할 건 작품 속에서 두 부류로 나뉘는 기성세대의 모습이다. 그 하나는 여전히 과거의 모습 그대로 돈과 젊음, 권력에 집착함으로써 서민을 핍박하는 기성세대다. ‘무빙’에서 남북한의 긴장을 다시 고조시켜 옛 안기부의 위상을 되찾으려 하는 이들이고, ‘염력’에서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 원주민을 몰아내고 재개발하려는 자들이며, ‘하이파이브’의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교주가 그들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과 맞서 가족을 지키고, 나아가 사회를 지키려는 기성세대다. ‘무빙’의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초능력자 부모들이고, ‘염력’의 용역 깡패들과 맞서 싸우는 은행 경비원과, ‘하이파이브’의 과거의 사건으로 죄책감을 느끼며 사는 야쿠르트 배달원이나 작업 현장에서 늘 FM으로 임하는 작업반장이다. 이들은 시대가 만든 부조리에 피해를 봤지만, 그 피해가 현 세대(자식)에게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초능력을 하나의 은유로 본다면, 훨씬 많은 삶의 경험을 가진 기성세대는 현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특히 의학 기술이 날로 발달해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시대가 열렸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 그 힘을 오롯이 자신에게만 축적하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들과 나누는 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힘을 독식하려다 괴물이 되어버린 ‘하이파이브’의 영춘과 달리, 능력은 나눌수록 더 커지고 빛을 발한다. 장기기증의 본래 가치가 그러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