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으로 노후 기록하는 웰다잉 플랫폼, 서지수 망고하다 대표

죽음을 밝게 이야기하는 젊은 창업가가 있다. 웰다잉 플랫폼 ‘망고하다’를 이끌고 있는 서지수 대표다. 그녀는 “좋은 죽음이 있으려면 좋은 삶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내세우며, 누구나 쉽게 유언장을 작성하고 이를 통해 삶을 성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 대표의 문제의식은 학생시절 사회복지 현장에서 시작됐다. 대학 시절, 70대 이상 어르신 100여 명을 직접 만나며 유언에 대한 현실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분명하게 소득별 성향에 차이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분들은 변호사를 통해 이미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을 갖고 계셨어요. 반면에 노인정 어르신들은 종이에 몇 줄 적어두는 정도였죠. 그런데 그건 오히려 가족 간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효력이 없는 문서였습니다. 또 중산층은 죽음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며 아예 준비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어요.”
이 현실은 그녀에게 확신을 주었다. 모든 사람이 쉽고 정확하게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는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망고하다가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것은 죽음준비와 유언 작성을 돕는 방법을 정리한 ‘망고노트’였다. 와디즈 펀딩으로 시작한 이 노트는 단순한 유언장 틀을 넘어, 인생의 기쁨과 아쉬움, 앞으로의 희망을 정리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재산 정리표도 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공간을 마련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순간, 아직 이루고 싶은 꿈, 장례 방식에 대한 소망까지 담을 수 있죠.”
이 노트는 ‘0%’에 가까운 반품률을 기록할 정도로 시장의 좋은 반응을 받았다. 유언장이 더는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나와 가족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새벽 4시에 깨달은 유언의 무게감
물론 창업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전통적으로 ‘죽음 산업’과 관련된 업계는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 사회를 기반으로 한다. 그들의 눈에는 서 대표가 ‘어린 여자아이’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했고, 이는 편견으로 돌아왔다. “은 공예 같은 일이 낫지 않겠냐”, “바지사장을 세우는 것이 좋다” 같은 말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링 위에 올라가지 않은 선수는 선수라 부를 수 없다”는 글귀를 되새기며 경기에 뛰어들었다.
서 대표와 망고하다 팀이 사회적 책임의 무게를 절감하게 된 계기는 2021년 어느 날 새벽 4시에 찾아왔다. 앱이 베타 테스트 중이던 시점, 한 사용자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이를 발견한 개발자의 긴급 전화를 받은 서 대표는 즉시 관계 기관에 신고했고, 주변에 자문을 구했던 전문가들과 지체 없이 연락했다. 당시 서 대표는 20대 중반에 불과했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모를리 없었다. 이 사건은 서비스 운영을 일시 중단하고, 회사의 방향성을 전면 재검토하는 혁신의 계기가 됐다.
이 사용자는 부산에 거주하는 20대 초반 여성으로, 구조 직후 “왜 경찰에 알렸나, 죽음을 다루는 회사 아닌가”며 신고 사실을 강하게 원망했다. 그러다 서 대표의 “한 달만 더 살아보자”는 설득을 받아들였다고. 몇 주 후, 그에게서 고맙다는 연락이 도착했고, 1년 뒤 박람회 현장에서는 직접 찾아와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 경험은 단순히 유언장을 기록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생명을 붙잡는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각성을 안겼다.
이 사건은 망고하다 철학의 전환점이었다. “좋은 죽음은 결국 좋은 삶에서 비롯된다”는 원칙을 다시 세우게 된 것이다. 나아가 회사는 AI 기반 자살 예방 시스템 구축에 착수했다. 암호화로 회사는 보지 못하는 사용자 유언의 문맥을 AI가 분석해 자살 고위험군을 조기 감지하고, 정확도가 높아지면 즉시 경찰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개발이 진행 중이다. 곧 공개될 새 앱에는 이 기능이 탑재될 예정이며, 동시에 심리 상담 무료 연계 서비스까지 제공해 사회적 안전망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죽음은 젊은 세대에게 여전히 낯선 단어다. 하지만 최근 젊은 세대는 점점 더 죽음을 가까이 받아들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이태원 참사 같은 사건들이 세대를 막론하고 인식을 바꾸어놓았다. 실제로 망고하다의 이용자 중 다수는 2030세대다. 서 대표는 이를 “후회 없이 오늘을 살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라 해석했다. 망고하다는 단순히 문서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가치와 감성을 담아내는 유언을 지향한다. 초록우산,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와 함께 진행한 ‘처음 쓰는 유언’ 캠페인도 그 일환이었다.

액티브 시니어를 향한 새로운 전환
서지수 대표는 망고하다의 타겟층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니어 세대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주 이용층은 3040세대였다. 자녀를 키우며 자신의 죽음이나 부모의 노후, 또 자녀에게 무엇을 남길지를 고민하는 세대였고, 실제로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주며 시장 탐색에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서 대표는 “이제는 충분히 그 시장을 이해했고, 본격적으로 시니어층을 공략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 배경에는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한 시니어 시장의 성장이 있다. 2019년만 해도 기대만큼 열리지 않았던 시장이, 최근 들어 60대와 70대를 축으로 크게 개방되었다는 판단이다. 서 대표는 “60대는 70·80대와 확연히 다른 세대이며, 말 그대로 액티브 시니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놀라운 활동성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여전히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 하고, 어떻게 하면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집중하는 특징을 보인다.
망고하다는 이러한 시니어층을 위해 서비스 모델을 개편하고 있다. 일상적인 유언 작성 문화를 유도하기 위해 앱 리뉴얼을 통해 일기 쓰듯 가볍게 기록을 남기도록 했으며, AI 기반 라이프 플래닝 서비스를 준비해 사용자의 기록을 분석하고 부족한 정서적·가족적 부분까지 진단해준다. 그 과정에서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 작성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사용자의 기록을 토대로 협업 단체나 기업과 연결해 식품·서적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안한다. 요양병원과의 B2B 협력 모델을 통해 건강할 때 유언을 준비하려는 환자들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망고하다는 오는 11월 일본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일본 기업의 제안이 있었고, 현지 시니어들의 IT 수용성이 높아진 것도 한몫 했다. 일본 현지에 지사를 설립해 본격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서비스 내용은 한국과 거의 동일하게 운영될 예정이다. 이미 ‘망고노트’의 일본어 번역본도 준비되어 있어 현지화를 위한 준비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소박한 바람이라도 유언으로 남겼으면
서지수 대표는 플랫폼을 운영하며 사용자의 유언 속에서 발견한 특징을 전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유언에는 ‘사랑한다’는 표현이 유독 많습니다. 직접 말로 하지 못했던 감정을 마지막 기록에라도 담고 싶어 하시는 거죠.”
이러한 표현은 주로 자녀, 배우자, 부모를 향한 마음이었다. 젊은 세대가 자기 자신이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 경우가 많다면, 시니어 세대의 유언에는 가족에 대한 후회와 애틋함이 깊이 스며 있었다. 그는 이를 두고 “사람들이 결국 남기고 싶은 건 돈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많은 어르신들이 죽음을 어렴풋이 생각은 하지만 가족들과는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 대표는 “실제로 장례식장에서 가족 간 의절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죽음에 대해 대화하지 않는 경향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괴로움으로 나가오는 것이죠”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죽음을 이야기하면 두려움이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내가 마지막에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재산은 어떻게 나눠라 같은 이야기도 좋지만 죽고 난 후에도 매주 밥 한 끼 같이 먹어라같은 수준의 소박한 대화라도 가족들과 자주 나누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또한 연명치료 여부 등 구체적인 의사를 건강할 때 미리 남겨두는 것이 가족에게 큰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죽음을 준비하는 시점은 아프고 난 뒤가 아니라, 건강할 때입니다. 그래야 가족도 본인도 덜 고통스럽습니다.”
죽음은 삶의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까이에 있다는 한 소설가의 말처럼,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존재다. 노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유언은 내 삶의 철학이, 내 의지가 생의 마지막 이후에도 다음 세대에게 이어질 수 있는 확실한 메시지인 셈이다. 망고하다는 이 유언의 유효성을 어둡지 않게, 오히려 ‘밝게’ 소개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