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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의 적당한 거리

기사입력 2017-06-09 14:42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화보다 전쟁의 연속이었다. 지금의 평화는 극히 이례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인간 사이도 마찬가지다. 화합보다 갈등을 빚는 시간이 더 많게 느껴진다. 사소한 대화를 하다가도 작은 말의 가시에 상처를 입었던 경우는 얼마나 많았던가. 그럴 때마다 끝까지 다가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생각에 좌절감이 밀려오곤 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사소한 감정싸움에서 복잡한 다툼까지 대부분의 갈등은 ‘다름’보다는 ‘거리’ 조절의 실패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음을 알게 된다. 가족 간에도 그렇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이 아이의 반발을 사듯 친구 사이에도 거리 조절이 안 되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많다. 이럴 때 대부분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 치명상을 입는다.

오래된 친구 사이일수록 이 거리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까웠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카메라 포커스가 맞지 않듯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거리 측정에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우화처럼 가까이 다가가면 가시에 찔리고 멀어지면 추위에 떨게 되는, 가시털로 가득한 호저(豪猪) 부부 같은 딜레마다.

친구들 간에도 약자인 친구가 늘 상처 입는 것은 이런 이치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이 열악해 따뜻한 곳으로 가까이 가려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과 처지의 다름에 상관없이 다툼 없고 평안한 삶을 누리려면 서로 간의 거리를 적당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비결이 아닐까 한다.

나이 들면서 인간관계가 적당한 속도로 멀어지는 것이 서로를 지켜주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사물과도 마찬가지다. 옛사람들은 이를 관조(觀照)와 달관(達觀)으로 표현했다. 관조는 사물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이고 달관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두 가지가 인생을 사는 지혜라고 생각했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물질에 욕심을 내는 것처럼 추한 모습은 없다. 모든 것을 서서히 내려놓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할 나이이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고 물질을 멀리하려면 적당히 거리를 두는 방법밖에 없다. 그것이 관조의 힘이다. 관조의 태도를 견지하다 보면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물욕이 사라진다.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은 덤이다.

달관한 사람은 남과 부딪힐 일이 없다. 깨우치지 못한 인간들이 사소한 시비로 씩씩댈 때 달관한 친구는 옆에서 조용히 미소 짓는다. 감정의 과잉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선천적 달관자가 가장 행복하나 그렇지 못하다면 후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설파한 찰리 채플린의 말은 곱씹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매달려 자신의 감정을 학대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든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김민기의 노래 ‘봉우리’의 가사처럼 세상을 내려다보며 바다를 생각할 정도이면 적당한 거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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