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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시즌, 청첩장은 어디까지 보낼까

기사입력 2017-04-21 16:57

친구가 밥이나 먹자고 전화를 걸어 왔다.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던 필자는 청첩장을 챙겨들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모바일 청첩장을 이미 보낸 터라 따로 종이 청첩장을 챙기지 않아도 됐지만 얼굴을 대면해서 직접 건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친구는 딸의 결혼에 적당한 덕담을 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결혼식에 참석해 못해 미리 준비했다는 봉투는 꽤 두툼했다. 왜 못 오냐는 필자의 말에 친구는

“토요일에 강남에서 하는 결혼식은 너무 복잡해서 힘들어”

라는 뜻밖의 말을 했다. 40년 이상 이어온 우정을 생각한다면,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길 막히고 복잡한 서울의 결혼식이 싫어서 불참하겠다는 친구의 말은 상식을 벗어난 듯 했다.

“어떻게 결혼식에 안 온다는 얘기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

“형식이 뭐가 중요하니, 마음이 중요하지”친구는 웃으며 말을 했다. 필자 또한 혼주한테 얼굴 도장 찍자고 인사치례로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선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이 전혀 일지 않았다. 결혼식의 주인은 결혼 당사자들이니 신랑신부를 잘 아는 사람들이 와서 해주는 축하가 진짜 축하라고 친구는 덧붙였다.

딸과 사위는 비용이 적게 드는 작은 결혼식을 원했다. 그러나 작은 결혼식을 알아보면서 하객 규모만 작아질 뿐 전체 예식 비용은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양가 부모님이 초청할 하객과 신랑신부의 직장 동료, 교회 친구들을 꼽아 보니 작은 결혼식으로 수용될 수 있는 인원이 아니었다. 소박하되 낭만적인 결혼식을 원했던 아이들은 현실과 이상을 적절하게 버무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결혼식을 치르게 됐다.

필자는 결혼식의 규모와 상관없이 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만한 사람들에게만 청첩장을 돌리기로 했다. 결혼식장은 딸과 사위의 지인들로 채우고 싶었다. 연락이 끊긴지 오래된 사람으로부터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을 때 부조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부담스럽고 난처했던 적이 있다. 인연이 있었으니 청첩장을 보냈겠지만, 받지 않았으면 부조를 하지 않았을 사람에게서 청첩장이 날아오면 솔직한 심정으로 이건 아니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부조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때가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부조는 빚’이라며 필자의 생각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물론 필자와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 중에 연락을 받지 못해 서운해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첩장을 남발해 불편한 것보다는 청첩장을 받지 못해 서운해 하는 사람들을 달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요즘 예식문화가 바뀌고 있다.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한편에선 가족과 친인척들만 모여 조촐한 예식을 치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기존 형식을 벗어나 개성적인 결혼식을 올리는 한편 축의금을 사양하거나, 화환 대신 쌀을 기부 받아 어려운 사람을 돕는 뜻 깊은 결혼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자신의 결혼식은 스스로 치르겠다는 결혼 당사자들도 결혼식문화를 바꾸는데 한 몫 하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부모의 경제력으로 결혼하는 가정이 많아 부모 뜻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있지만, 결혼식의 주체가 부모에게서 당사자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모 얼굴 때문에 봉투 들고 찾아오는 부조문화도 점차 달라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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