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木]백일홍이라 부르기도 하는 배롱나무가 있다. 7월부터 9월까지 꽃이 피어 있는 화려한 꽃나무인데 그 하나하나의 꽃잎은 아주 작고 소박하다. 피어 있는 모습도 아름답거니와 바람에 날려 잔디나 연못에 무리지어 떨어져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그러나 나무백일홍도 알고 보면 한 꽃이 그렇게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게 아니고 수많은 작은 꽃들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오랫동안 그대로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꽃의 대명사는 역시 장미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자태도 아름답지만 향기까지 고혹적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는 가시가 있다. 아니 가시가 있어서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아름답지만 가까이하기 어려운 도도함이 있는 꽃이다.
대부분의 꽃은 피어 있을 때 아름답다. 시들면 그만이다. 향기도 사라지고 아름다움도 헛되다. 꽃의 아름다움보다 향기가 오래 기억되는 꽃 중에는 수수꽃다리가 있다. 흔히 라일락이라고 부르는 꽃이다. 아주 오래전 필자가 다니던 고등학교 교정에는 교문에서 교실 바로 앞까지 라일락이 길 양쪽으로 쭉 심어져 있었다. 새벽에 교문을 들어서면 그 향기가 온몸에 배어들곤 했다. 라일락 향을 맡으면 취기마저 돈다.
피어 있을 때보다 질 때 더 아름다운 꽃도 있다. 슬픈 아름다움을 간직한 듯한 동백꽃이다. 주먹만 한 핏빛 덩어리 같은 꽃이 어느 순간 툭 하고 떨어져버린다. 몇 년 전 찬바람이 부는 초봄 여수 오동도를 걸었다. 주먹만 한 붉은 동백꽃이 여기저기서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떨어져 누워 있는 붉은 동백을 보면 왠지 슬퍼진다.
질 때 아름다운 꽃 중에 벚꽃도 빼놓을 수 없다. 온 세상을 백색으로 물들이다가 한순간 바람에 날려 눈송이처럼 흩어지는 꽃잎. 벚꽃은 그러나 그 가벼움 때문에 허무하거나 슬픈 마음이 밀려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피어 있는 꽃잎보다 지는 꽃잎이 더 화려하고 왁자하다.
흔히 우리는 꽃을 감상할 때 꽃의 생김새나 색깔 등의 자태를 본다. 그러나 자태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향기가 고약하다면 좋아할 수가 없다.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꽃의 가치가 천 냥이라면 향기는 구백 냥은 넘을 것이다. 꽃이 피는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물론 아무리 좋은 향기를 간직한 꽃도 ‘화무백일홍’의 진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이렇듯 때가 되면 꽃은 피고 시들어 떨어져버리지만 그 향기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사람도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