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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지원사, 독거노인 세상과 연결하는 삶의 통로”

입력 2025-07-09 14:04

12년 차 생활지원사 이인숙 씨, “어르신 안부 확인이 하루의 시작이죠”

▲생활지원사 이인숙 씨.(이준호 기자)
▲생활지원사 이인숙 씨.(이준호 기자)

“이분을 만난 건 제 행운이에요. 늘 우울했던 생활이 인숙 씨를 만나 즐거워졌어요.”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80세 할머니는 이인숙 씨의 손을 꼭 잡고 기자에게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고 생활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답답했던 삶이 어떻게 개선됐는지 이야기했다.

올해로 만 65세. 2014년부터 12년째 생활지원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인숙 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어르신들의 안부를 챙긴다. 소속은 서울시 강남구노인통합지원센터. 현재 이 센터에는 그녀처럼 현장을 누비는 생활지원사가 88명에 달한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지인의 추천 때문. 시할머니, 시부모, 시동생을 한 집에서 모셔야 하는 장손과 결혼한 며느리 생활에 익숙했기 때문에 어르신을 모시는 일은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어르신을 보면 즐거운 그의 성격과도 잘 맞았다고.

“어르신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죠. 어떤 이들은 ‘기 빨린다’는 표현까지 쓰던데, 저는 어르신들 만나면 웃음이 나요. 우울할 틈 없이 얼굴에 웃음 주름이 생길 정도죠.”

▲담당 어르신을 상대로 보행 교통사고 예방 안전수칙을 교육 중인 이인숙 씨. 이처럼 일상 속 위험에 대한 예방 교육도 생활지원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이준호 기자)
▲담당 어르신을 상대로 보행 교통사고 예방 안전수칙을 교육 중인 이인숙 씨. 이처럼 일상 속 위험에 대한 예방 교육도 생활지원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이준호 기자)

생활지원사는 보건복지부의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업에 따라 독거노인과 고령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안전 확인 △정서 지원 △일상생활 지원(청소·세탁 등) △사회참여 활동 연계 △서비스 연계(보건·복지 자원 연결) 등을 수행하는 역할이다. 특히 최근에는 온열질환과 같은 재난 위험에도 대응하기 위해 IoT 센서 등을 활용한 모니터링까지 도입되면서 이들의 활동 범위는 한층 넓어지고 있다.

생활지원사의 업무를 단순한 전화나 방문만으로는 보기 어렵다. 어르신들의 건강, 정서, 안전을 종합적으로 살피기 때문에 ‘생활 밀착형 돌봄’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인숙 씨가 담당하는 어르신만 14명. 그중 상당수는 하루 2~3시간 대화를 나눠야 안심하는 분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간단한 민원에 불과한 문자 메시지 하나도, 이 씨에게는 어르신의 평안을 위한 중요한 소통이다.

“문맹이 아니더라도 글을 잘 못 읽으시는 어르신이 많아요. 성경책은 보시지만 보험 서류나 공공기관에서 온 우편물은 어려워하시죠. 그런 걸 대신 읽어드리고, 이해를 도와드려요. 문자메시지 보내는 것도 도와드리고요.”

그는 공식적으로는 하루 5시간,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사실상 24시간 근무”라고 이야기한다. 어르신들의 도움 요청이 전화로, 문자메시지로, 수시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이 오죠. 딱히 요구사항이 없어도 외롭거나 말벗이 필요할 때도 연락을 주시고요. 또 어르신들이 연락을 주지 않더라도 IoT가 응급 상황에 대한 경보를 전달하면 바로 대응해야 하니까요. 생활지원사가 반나절 간단하게 일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오해입니다.”

▲독거노인들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IoT 앱 화면. 이산화탄소 배출, 적정 온도, 외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이 앱은 어르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보물'이지만, 생활지원사들이 24시간 마음 놓을 수 없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준호 기자)
▲독거노인들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IoT 앱 화면. 이산화탄소 배출, 적정 온도, 외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이 앱은 어르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보물'이지만, 생활지원사들이 24시간 마음 놓을 수 없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준호 기자)

생활지원사 활동을 하면서 노인들이 친절한 것은 아니다. 노인과의 심리적 유대감, ‘라포’가 형성되려면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많은 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 씨는 설명한다. 심지어는 민원을 무기로 생활지원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거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가장 어려운 대상은 ‘보호자’가 없는 노인들이다.

“자녀나 가족과 같은 보호자가 없는 분들은 비상시에 대처하기가 어려워요. 예전에 췌장암을 앓던 어르신이 낙상으로 사고가 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보호자가 없어 입원이 곤란한 적이 있었죠.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도 받기 전이라 재가요양서비스도 받을 수 없었고요. 결국 주변 종교기관을 통해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그분을 도울 수 있었어요. 이런 제도적 공백에 있는 노인들을 응급 상황 시 도울 수 있는 지원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고령층을 대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이별의 순간도 자주 다가온다. 마음의 소진은 아무리 이 일을 오래 해도 적응이 쉽지 않다. 이 씨는 아직도 가슴 아픈 기억 때문에 앞을 지나가지 못하고 돌아가는 집도 있다고 했다. 게다가 손에 쥐는 돈은 최저임금에 약간의 수당 정도다. 하지만 돈이 아닌 보람 때문에 이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이 씨는 설명한다.

생활지원사라는 이름은 여전히 낯선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 씨가 하는 일은 한 사람의 ‘생활’을 지지하는 근간이 된다. 독거노인들은 대부분의 일에 도움이 필요하지만 기댈 곳이 마땅치 않다. 청소와 안부 확인, 정보 전달을 넘어, 이들의 활동이 고립된 어르신들의 ‘삶의 통로’가 되는 셈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겉으론 쉬워 보여도, 그 이면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저한테 ‘당신 때문에 다시 살아볼 용기가 생겼다’고 하셨어요.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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