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경 한국중장년협회 초대 회장

"중장년은 결코 퇴장해야 할 세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생생히 일하고, 배울 수 있고,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경험 많은 '어른'입니다."
배미경 회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경험’의 가치였다. 간호사에서 시작해 제약 마케팅 전문가로, 그리고 헬스케어 전문 컨설팅사 회장을 거쳐 중장년 일자리 기업의 설립, 한국중장년협회의 초대 회장 취임에 이르기까지. 배미경 회장의 커리어는 단순한 경력의 연속이 아니다. 경험의 힘을 믿고, 변화를 주도해왔다.
배 회장은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병원에서 간호사로 첫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제약사로 이직해 영업과 마케팅 업무를 두루 경험하며, 헬스케어 시장의 구조와 현장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 시장을 읽는 법을 배우기 위해 리서치 회사에서 제약 분야 조사 업무까지 경험한 그는, 현장에서의 실무감각과 전략적 통찰을 바탕으로 헬스케어 컨설팅, 마케팅 대행사 ‘맥캘리커뮤니케이션즈’를 창립했다.
15년간 맥캘리커뮤니케이션즈는 브랜딩, 학술 심포지엄, 영업 툴 개발 등 제약·의료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며 업계 강자로 자리매김했으나, 위기를 맞이했다. 바로 팬데믹이다.
“코로나19가 대유행되면서 신약의 출시와 이를 위한 발표회, 심포지엄, 세미나 등 저희의 주력분야가 ‘증발’했어요. 연기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다 보니 저희가 설 자리가 별로 없었죠.”
"다음 직장은 없다"는 말에서 시작된 일자리 실험
배 회장은 팬데믹과 제약시장 침체라는 이중 충격 속에서 기존 사업을 재편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바로 '중장년 일자리'라는 주제였다. 주변 친구들, 특히 임원직에서 퇴직한 50대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이제 우리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다"고.
“저는 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일할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데, 사회와의 연결이 끊긴 채로 살아간다는 게 너무 가혹했어요.”
그는 단지 '직장'을 알선하는 수준이 아니라, 삶과 연결된 '존재의 확인'을 도와주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중장년 일자리 매칭 서비스 '커넥티드456'이 시작됐다.
"나이가 몇이죠?"
구직자를 소개할 때 기업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커넥티드456는 수많은 상담과 매칭을 통해, 중장년 구직자들이 이력이나 실력이 아니라 단지 '나이' 때문에 탈락하는 현실을 뼈아프게 마주했다.
“어떤 분은 IT 부서장을 지낸 경력자였는데, 골프장 주방보조직에 지원하셨어요. 이유요? 매일 운동하듯 몸을 쓰는 일이니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진심과 유연함이 오히려 젊은 층보다 낫다고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기업은 ‘팀워크 저해’, ‘조직 적응력’ 등의 이유로 중장년 채용을 꺼린다. 배 회장은 이를 "연령에 대한 선입견이 그 사람의 전 생애를 무시하게 만드는 폭력"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중장년협회와 연령 다양성 인증제
커넥티드456는 단순 매칭 플랫폼이 아니다. 지원자와 1:1 상담을 통해 그들의 경력, 성향, 건강상태, 희망 조건을 꼼꼼히 파악한다. 때론 ‘시골 기숙사 제공’이 설득의 단서가 되기도 하고, ‘파트타임 일자리’가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장년이 원하는 건 단지 돈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일어날 이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존중받는 존재로 다시 서는 경험이죠.”
배 회장은 이를 ‘일자리를 통한 삶의 복원’이라 부른다. 이 철학은 곧 플랫폼이 단지 고용을 넘어 문화, 건강, 금융, 커뮤니티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비전으로 확장됐다.
배 회장은 커넥티드456의 철학을 제도화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한국중장년협회'를 창립했다. 협회는 국내 최초로 '연령 다양성 인증제'를 도입, 나이가 차별이 아닌 다양성의 자산이 되는 문화를 확산하고자 한다.
“인종차별은 안 된다, 성차별은 안 된다, 우리는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왜 '연령차별은 안 된다'는 말은 없을까요?”
그녀는 ESG 경영의 일환으로 연령 다양성 지표를 도입하고, 일정 비율 이상 중장년을 고용한 기업에 인증서를 수여하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이 제도가 기업의 실질적인 인식 변화와 정부의 제도적 지원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