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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행정이 놓친 틈, 마음으로 메웠습니다”

입력 2025-07-15 11:47수정 2025-07-15 14:06

38년 공직생활 마감한 지역사회 복지 전문가, 옥미정 전 강남구 복지생활국장

▲옥미정 전 강남구청 복지생활국장(이준호 기자)
▲옥미정 전 강남구청 복지생활국장(이준호 기자)

최근 38년간의 긴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옥미정 前 복지생활국장을 만났다. 옥 전 국장은 1988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모든 공직생활을 강남구청에서 지낸, 그간의 변화를 꿰뚫고 있는 지역사회 복지의 산증인이다. 지역사회 현장에서 유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복지의 전 생애주기를 직접 경험한 이로서, 그는 늘 주민과 함께 성장해 온 공직자였다.


“퇴임이요? 너무 좋아요. 서운하거나 아쉽기보다는 그냥 홀가분해요.”

그는 퇴임 이후 삶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충북에 마련한 텃밭을 가꾸고, 집안 정리를 하며 보내는 매일이 꽤 바쁘다고 한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농담도 덧붙이며 웃었다. 그의 삶의 리듬은 자연인으로서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다니던 길인데, 어떤 가게가 사라지고, 어떤 매장이 새로 들어섰는지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직장이란 공간에만 있다가 낮에 거리를 활보하니 이제서야 동네가 새롭게 보여요.”

평생 함께한 지역사회 복지 행정

옥 전 국장은 강남구 최초의 사회복지직 출신 서기관이자, 강남구 노인복지과의 창립 멤버다. 아동복지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이후 영유아, 청소년, 노인, 장애인, 복지정책 등 거의 모든 복지 부서를 순환하며 행정과 현장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활약은 대단했지만, 핵심 부서와는 거리가 먼 사회복지직에서 승진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초 4급 서기관 승진은 의미 있는 성과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는 겸손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경력에 서기관 승진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시대의 인식이 바뀌면서 기회가 주어진 거죠.”

그는 초창기 복지 환경에 대해 “당시엔 경로당에서 반찬을 각자 싸 와 식사하셨고, 무료급식소도 드물었다”며,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던 환경을 회상했다. 2009년, 강남구 노인복지과가 서울시 자치구 중 다섯 번째로 신설될 당시 그는 중장기 계획 수립과 설치를 주도했다. 이 시기 수립된 노인복지 종합계획에는 어르신 전담 부서 신설, 중점시설 확충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곡동 커뮤니티복합시설의 구상,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 설립, 구립 어린이집 확충과 관리체계 개편, 장애인 시설 유치 협의 등은 다양한 사업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특히 보육지원과장으로 발령받았을 때는 100곳이 넘는 어린이집 등 관련 시설을 한 달 동안 직접 방문해 예산·인력·시설 현황을 점검하고, 중복 예산이나 인력 운용 오류를 바로잡는 시스템 정비를 추진한 일화도 있다.

“직원들이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산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내 돈이라면 이렇게 쓰겠냐’는 질문을 늘 스스로 던졌어요.”

서울시를 움직인 ‘우리동네 돌봄단’

옥 전 국장이 남긴 가장 큰 족적 중 하나는 '우리동네 돌봄단'이다. 이 사업은 단순한 복지 시책이 아니라, 주민이 주민을 돌보는 지역 밀착형 돌봄 체계로, 전국 지자체가 주목하는 모델로 성장했다.

이 사업의 출발점은 2015년 무렵 복지정책과 희망복지 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당시 그는 고위험 가구의 발굴과 지원을 위해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이웃 주민’의 역할에 주목했다. 통장, 반장, 자율방범대원, 주민 자원봉사자들이야말로 복지 사각지대를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정리해 서울시에 공모 사업으로 제안했고, 당시 4~5개 자치구가 시범 운영에 참여했다.

“우리는 단순히 '모니터링'만 시키지 않았어요. 마을 안에서 관계망을 복원하는 일, 그것이 이 사업의 진짜 의미였죠.”

이후 강남구의 모델은 서울시의 정규사업으로 채택되었고, 현재는 '서울형 복지안전망'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복지 사각지대의 상시 발굴 체계가 작동하게 되면서, 놓치기 쉬운 위기 가구에 대한 선제 대응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이웃이 위기 가구를 가장 먼저 알아채죠. 그런 분들이 함께할 때 복지의 빈틈이 채워집니다. 행정이 놓치는 틈을 마을이 메운 거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히 사업을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선 공무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업무에 대한 숙련도와 자기 책임감”이라고 강조했다. “민원인에게 ‘제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제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 그게 복지 행정의 기본입니다.”

▲옥미정 전 강남구청 복지생활국장(이준호 기자)
▲옥미정 전 강남구청 복지생활국장(이준호 기자)

‘부자 동네’ 강남의 그늘

옥 전 국장은 강남이라는 지역이 가진 복지 행정상의 ‘장단점’을 명확히 짚었다. “예산이 많으니까 사업 수도 많고, 주민들의 요구도 복잡하고 다양해요. 시범사업도 대부분 강남에서 먼저 시작하죠. 그래서 새로운 걸 먼저 시도하고 검증해보는 기회가 자주 주어졌어요.”

이어 그는 “강남에서 성과가 입증되면 서울시 전체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 덕분에 장애인, 노인, 아동, 여성, 교육, 정책기획까지 두루 경험할 수 있었고, 사업 하나하나가 일종의 실험 과정처럼 느껴졌죠. 복지 공무원으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였어요”라고 회고했다.

그는 복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이 지역 내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남에도 어려운 분들이 꽤 많아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는 분들도 많고요. 그분들의 마음까지 이해하고 돌보는 게 복지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재건축과 기부채납 문제를 예로 들며, 공공시설 유치에 대한 주민 수용성 확보의 어려움도 언급했다. “실버케어 센터나 데이케어 센터와 같은 고령화를 대비한 공공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도 결국은 본인들이 나이 들어서 이용할 시설이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3자의 입장에선 옥 전 국장의 다양한 경험과 네트워크가 복지 현장에 다시 쓰이길 바랄 수도 있고, 정든 조직을 떠나는 데 아쉬움이 남지 않겠느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그냥 주어진 역할을 다한 것뿐이에요. 이제는 후배들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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