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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채무를 나누는 고민, 부담부증여의 지혜

입력 2025-07-28 08:00

[세무 가이드] 자식에게 집을 물려준다면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사람이란 참 오묘해, 무언가를 온전히 내어주고 싶으면서도 그 무게가 너무 크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집 한 채 물려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 집을 줄게”라는 말은 쉬워도, 그 뒤에 따라붙는 복잡한 세금 계산 앞에선 누구든 망설이게 된다. 이런 고민 끝에 ‘부담부증여’라는 선택지가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부담부증여는 한마디로 말하면 ‘조건부 증여’다. 부동산이나 재산을 자녀에게 넘겨주되, 그에 딸린 채무를 함께 넘기는 방식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시가 5억 원짜리 아파트를 주면서 그중 2억 원은 대출이니 네가 갚으라고 조건을 붙인다면, 자녀는 그 채무를 인수하고 나머지 3억 원 상당의 순수한 증여를 받게 된다. 이때 세금은 나뉜다. 자녀는 순수 증여분인 3억 원에 대해 증여세를 내고, 부모는 나머지 2억 원을 유상으로 팔았다고 간주돼 양도소득세를 낸다. 이때 부모가 1세대 1주택 비과세 요건을 갖췄다면 양도세는 면제된다. 세금 부담이 절묘하게 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이 마냥 편리한 절세 수단은 아니다. 이 구조의 핵심은 ‘채무’다. 과연 어떤 채무가 세법상 인정되는가에 따라 부담부증여의 성패가 갈린다. 상속세및증여세법은 이 점에 보수적이다. ‘담보된 채무’, 다시 말해 증여하려는 부동산에 근저당 등으로 실제 담보 설정된 채무만 인정한다. 예컨대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받은 은행 대출이라면 인정되지만, 부모의 신용대출이나 개인 간 채무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소득세법은 좀 더 실질적이다. 담보 여부를 따지지 않고, 수증자인 자녀가 실제로 채무를 떠안고 갚은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 부분은 유상 거래로 보고 양도세 과세 대상으로 판단한다.

이 두 시선 사이에서 납세자는 현실적인 해석을 기대하지만, 세무 당국은 때때로 보수적으로 접근한다.

국세청의 상속세·증여세 과세 내부 지침인 집행 기준도 상속세및증여세법 해석을 따르다 보니, 증여재산에 담보되지 않은 채무는 부정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법원은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2016년 감사원의 심사청구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납세자는 부모의 ‘개인 신용대출’을 자녀가 실제로 인수하고 변제했는데도, 국세청은 담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부인하고 증여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해당 신용대출 차용증의 신빙성과 실제 변제 사실을 인정해 이 부분을 ‘유상 양도’로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증여세가 아닌 양도소득세가 적용돼, 납세자에게 유리한 판단이 내려졌다.

비슷한 맥락의 결정은 이미 2003년 국세심판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아들이 어머니의 주택을 증여받으면서 담보되지 않은 개인 채무를 대신 갚은 경우, 이를 대물변제로 보아 일부를 양도로 인정했고 나머지만 증여로 판단해 각각 다른 세금을 적용했다.

또한 2007년 서울행정법원 판결에서는 아예 “증여세법상 공제 가능한 채무가 아니더라도, 채무를 실제 인수했다면 양도로 본다”는 명확한 판단을 내렸다. 이는 형식이 아닌 실질, 즉 증빙과 사실관계에 따라 세금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법 조항의 해석을 넘어 ‘사실을 본다’는 판례의 흐름을 보여준다. 증여 과정에서 자녀가 실제로 부모의 채무를 떠맡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하다면, 부담부증여로 인정될 여지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증빙’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차용증, 금융거래 내역, 상환 기록 등 입증 서류가 없다면 세무당국의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부담부증여는 증여자와 수증자가 책임과 의미를 함께 나누는 행위다. 그저 재산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은 자녀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넘기는 것이다. 이 구조는 증여자에게는 절세의 지혜가 되고, 수증자에게는 재산 이전의 가치를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다만 이 방식이 오용되면 조세 회피로 오해받을 수 있고,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전액 증여로 간주돼 오히려 세금이 늘어날 수 있다.

인생 2막에서 자산을 정리하고 자녀에게 전하는 일은 단순한 물리적 이전을 넘어선다. 그것은 신중한 판단과 적절한 시기, 그리고 정서적 결단이 동반되는 설계 행위다.

부담부증여는 그 설계 안에서 세금이라는 현실을 지혜롭게 넘기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마음을 전하는 일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세금 역시 ‘마음의 언어’로 미리 읽어봐야 한다.

재산은 결국 살아온 삶의 무게다. 그 무게를 어떻게 나누고,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 이 고민의 끝에서 부담부증여는 조용히 말한다. 함께 짊어진다는 것이 진짜 나눔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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