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지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 회장
20년 넘은 지금에야 속내를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남을 돕는 일에 집중을 넘어 집착했을까.
“진짜 병 같아요.(웃음) 장애인 치과 진료 사업에 몰입했을 땐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냐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무슨 계기가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할까 싶었던 거죠. 그냥 제 성격인 것 같아요. 한번 꽂히면 무조건 해내야 하는 성격이죠. 장애인 치료를 돕다 보니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이 보였고, 제도와 시스템을 원활하게 바꾸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았으니까요.”
공익에 집착하는 ‘환자’
그래서 그의 활동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선 늘 색안경을 낀 평가가 뒤따랐다. 분명 무슨 ‘사욕’이 있을 거라는 의심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진행한 무료 틀니 사업이나 장애인 치과 설립 등은 개인적인 희생 없이는 실현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명문 치과대학 출신이라는 간판을 달고 평범하게 동네 치과의사로 살았으면 그의 삶은 훨씬 편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중심에 있었던 무료 틀니 사업은 저소득 노인들에게 틀니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노인 틀니가 일부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나 지난 2012년이었다.
사랑나누기치과의사모임은 치과계 최초의 사회공헌 재단인 ‘스마일재단’ 설립의 자양분이 됐다. 스마일재단은 치과 분야 공익 활동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공공 장애인치과병원 설립과 진료 네트워크 구성을 주도해 장애인의 치과 진료 환경을 개선했다.
“당시 장애인들은 치과 진료를 받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대부분의 동네 치과가 상가 건물 2, 3층에 자리 잡고 있잖아요. 치과 문턱을 넘는 것 자체가 문제였던 거죠. 또 행동조절이 어려운 중증 장애 환자들은 전신마취가 필요한데 당시 동네 치과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장애인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치과를 설립하기 위해 스마일재단이 노력했고, 2005년 서울시를 통해 첫 장애인치과병원을 설립할 수 있었죠.”
현재는 전국에 15개 장애인구강진료센터가 운영 중이고,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은 설립 이후 19년간 누적 환자가 35만 명을 넘었다. 하반기에는 서울 강서구에 건립 중인 서부장애인치과병원이 운영을 시작한다.
치매 환자의 치과 치료 문제에 주목
이제 여한이 없다고 여길 때쯤 또 다른 불합리가 그의 눈에 띄었다. 이번에는 장애인이 아니라 치매 환자의 치과 치료에 관한 것이다.
“병원에서 장애인을 치료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치매 환자들에게도 관심이 갔어요. 그런데 장애인치과병원에서 치매 환자는 치료받지 못해요. 법적으로 장애인이 아니니까요. 그렇다 보니 치과 진료를 받기 어려워요. 환자의 행동조절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동네 치과에서도 어려워하고요.”
치매 환자의 난이도 높은 치료나 치매 환자가 갈 치과가 없어 가족들이 난감해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관련 분야에선 잘 알려진 이야기다. 협조가 어려운 아이들 치료와 노인성 질환의 합병증을 걱정해야 하는 노인 치료의 어려운 부분만 합쳐놓은 것이 치매 환자의 치과 치료다. 게다가 본인이 아프다는 의사표시를 하거나, 구체적인 증상 설명도 어렵기 때문에 난이도는 더 높아진다. 그래서 치매 환자 가족들은 그들을 잘 받아주는 치과 리스트를 만들어 알음알음 공유하기도 한다. 그 목록에는 물론 임 회장의 따뜻한치과병원도 들어 있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치매 환자를 위한 구강건강 관리 방안은 제도권 안에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예요. 그래서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를 만들고 관련 단체들을 만나보았더니 생각보다 치과 분야가 발 들인 공간이 없더라고요. 우리는 치매 환자의 효과적인 치료가 목적인데, 사업 예산 확보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행동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문제였죠.”
임 회장이 치매 환자의 치과 치료를 중요하게 여기는 원인은 단지 환자와 가족이 불편해서가 아니다. 치과 치료가 노인의 건강, 특히 치매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꼽히는 노인 폐렴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인 폐렴은 흡인성 폐렴이라고도 불려요. 우리나라 70세 이상 노인의 사망 원인 1위로 폐렴이 꼽힙니다. 이 병은 구강 분비물이나 위에 있는 내용물 등 이물질이 기도로 들어가 폐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이에요. 입안 병원균이 증식해 폐로 넘어가는 것이 문제라서, 구강 관리만 제대로 해도 병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정기적으로 구강 관리를 하도록 제도화했어요. 대단한 치과 치료도 아니고 청소에 가까운 관리만 했는데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왔죠. 한 요양원의 통계를 보면 제도 시행 후 5년 만에 환자의 입원 일수는 1/4로 감소했고, 수익은 더 늘었다고 해요. 많은 환자를 받을 수 있게 되어서죠. 심지어 직원들 이직까지 줄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또 부실한 구강 관리로 인해 병원균이 뇌까지 도달해 치매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있으니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 부분은 올해 치매 환자 1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둔 우리가 분명히 참고할 만한 이야기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를 자랑하고, 인구의 1/3가량을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 오면 그 대응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에서 지역사회 통합 돌봄을 역점 사업으로 꼽는 이유도 기존의 요양시설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대안이 절실하다는 속내가 포함되어 있다. 환자의 입원 일수를 줄일 수 있다면 부족한 요양 인프라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국내 사정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제도 지원 뒷받침되었으면
“치매 국가책임제 속에 치매 환자의 구강 관리에 대한 주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치과 분야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어요. 환자 가족에게 전가되는 셈이죠. 치매 환자의 입안 상태에 대한 통계도 없고, 치매안심센터에 구강 건강 전문 인력도 없어요. 노인 장기요양시설에 치과위생사 배치는커녕 직원 대상의 기본적인 교육도 안 되어 있고요. 관련 부처 담당 공무원부터 정부 기관, 환자 단체 등 갈 수 있는 곳은 다 다니면서 부딪히고 있어요.”
그 효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7월 10일 건강보험공단 서울요양원에 구강보건실이 설치됐다. 스마일재단이 주축이 되어 설립을 추진한 것이 빛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요양시설 두 군데에도 이와 같은 모델의 구강보건실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대한노인회도 이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적극 지원 중이다.
“의료기관이 아닌 요양원 환자들을 위한 계약의사 제도도 문제예요. 요양원에서 구강 관리의 중요성을 모르니 치과의사를 찾지 않아요. 전국의 4500여 개 요양원에서 활동하는 치과 계약의사가 6명뿐입니다. 이들이 약 20만 명의 환자를 돌보는 셈이니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래서 장기요양기관의 평가지표에 구강 관리에 관한 항목을 넣어 필요성을 체감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