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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시대, 폭염ㆍ폭우ㆍ가뭄ㆍ산불 해결하는 ‘빗물 관리’

입력 2025-08-11 07:00

빗물박사 한무영 “빗물 경제력 높이는 게 기후 위기 경쟁력”

(오병돈 프리랜서)
(오병돈 프리랜서)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대학에서 환경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해외에서 상하수도 설계를 담당했던 한무영 박사. 손꼽히는 수처리 전문가인 그가 ‘처리할 필요가 없는 깨끗한 물’을 연구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그에 따르면 복잡한 수처리 과정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이상적인 수자원은 바로 ‘빗물’이다. ‘빗물로 모두를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우리(雨利) 한무영의 눈엔 빗물의 가치가 보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은 비가 아닌 ‘금’이다.


(오병돈 프리랜서)
(오병돈 프리랜서)

거저 내린다고 그저 흘려보내면 거지꼴

태양열에 의해 증발했다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비는 깨끗한 증류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물을 외면한 채 돈과 에너지를 들여 강물과 지하수를 정수해 사용한다.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택할까?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이자 ‘닥터 레인’으로 불리는 한무영 교수는 이 질문에서 시작해 평생 빗물의 가치를 알리고 실천해왔다.

“우리가 내는 수돗물 값을 2만 5000원이라고 한다면, 상수도 비용이 1만 원, 하수 처리비용이 1만 5000원쯤 됩니다. 하수를 다시 상수로 만드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요. 흙이 묻은 지하수, 똥이 묻은 강물과 달리 빗물은 순수하게 증류된 가장 깨끗한 물입니다. 부유물을 가라앉힌 윗물을 생활용수로 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죠.”

한무영 교수는 빗물을 향한 오해를 바로잡는 데 평생을 바쳤다. ‘산성비’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막연한 불안에 관해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 10~20분만 지나면 대기 오염물질은 대부분 씻겨 내려간다. 산도는 pH 5.6 내외로, 피부와 비슷할 만큼 안전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일상적으로 마시는 탄산음료는 훨씬 산도가 높다.

그는 국제 물 포럼에서 빗물로 우린 꽃차를 대접해 세계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고, 도시농부와 협업해 빗물로 ‘하늘맥주’를 만들기도 했다. “빗물은 과학적으로도, 맛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최고의 수자원”임을 몸소 증명한 것이다.

빗물을 식수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7월 4일 그는 서울 관악산 보덕사에 빗물 식수화 시설 설치를 완료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빗물을 병에 담아 팔기도 한다. 호주에서 만날 수 있는 ‘클라우드 주스’는 빗물을 원료로 한다. 일반 생수보다 더 고급이라는 인식이 있어 값도 더 나간다. 맛을 물었더니, 옛말에 괜히 ‘단비’라는 말이 있었던 게 아니라며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이 일품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한 교수는 파이프를 통해 오가는 것만 물이라고 인식하는 현대의 좁은 시각을 비판하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장소가 바로 수원지다. 빗물은 운반·정화에 드는 에너지와 비용, 탄소 발생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가뭄·홍수·미세먼지·산불 등의 문제도 모두 빗물에 주목하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빗물 철학은 우리 전통과 농경문화에 이미 녹아 있다. 물이 귀한 제주는 활엽수 밑동에 짚으로 엮은 ‘촘’을 걸고 아래에 항아리를 대어 빗물을 받는 전통이 있다. 이런 ‘촘항’처럼 집마다 빗물 저금통을 갖추면 가뭄이나 화재 때도 든든한 보험이 된다. 이보다 큰 역할을 하는 건 논이다.

“논은 작은 댐이고, 빗물을 모아 땅속에 저장하는 최고의 자연 저수지입니다. 논농사를 짓는 농민을 물 관리자로 인정하고, 댐 건설에 쓸 비용 일부를 농부에게 지원하면 어떨까요? 댐 건설과 비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의 말대로라면 논과 텃밭, 옥상, 아파트 화단 등 빗물이 닿는 모든 곳이 미래를 위한 저금통이 될 수 있다.


▲한무영 교수는 빗물을 받아 아파트 정원의 조경용수로 쓴다.(한무영)
▲한무영 교수는 빗물을 받아 아파트 정원의 조경용수로 쓴다.(한무영)

손주들과 방울방울 저금통에 모으는 재미

“집집마다 빗물 저금통을 마련해두는 게 비상금 통장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한 교수는 아파트 화단에 약 250리터짜리 빗물 저금통을 설치해 조경용수로 사용해왔다. “빗물이 식물의 보약”이라며 “세탁·청소·조경·화재 대비 등 생활 곳곳에서 빗물은 유용하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함께 빗물 저금통을 관리하던 손주가 몇 해 전 가족과 외국에 나가 생활 중이다. 콩 심은 데 난 콩은 옮겨 심어도 콩인 법. 손주는 할아버지에게 현지의 빗물 활용 소식을 제보하고, 학교 친구들에게는 빗물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며 ‘빗물 전도사’로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가정교육과 함께 실천이 이뤄져야 할 또 다른 영역은 바로 교육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주장하는 빗물 관리의 중요성은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지구를 살리는 빗물’이라는 단원으로 소개된 바 있다.

“학생들이 직접 빗물 시설을 관리하고, 수질·수량을 측정하며, 친구와 가족에게 빗물과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 ‘BTS(빗물, 티처, 스튜던트)’를 만들었어요. 미래 세대인 학생들이 물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토목공학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레인 포 올(Rain for All)’ 운동을 통해 빗물 식수화와 교육을 결합한 모델을 전파한다. 몬순기후인 캄보디아는 그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협력 국가다. 캄보디아 교육부와 협력해 1000개 학교에 빗물 저금통을 설치하는 사업이 ‘레인 스쿨’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공짜 물을 받아 식수로 쓰면 아이, 여성과 시니어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크게 달라져요. 시설의 유지관리를 여성과 아이들에게 맡기면 이들의 자존감도 올라가고요. 어디든 지역 특성에 맞게 응용할 수 있어요.”

빗물로 모두를 이롭게 하겠다는 그의 홍익인간 정신은 섬나라와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물관리 환경을 바꾸고 있다.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각자 책임감을 갖고 관리하면 수처리 비용과 탄소 발생량, 홍수·가뭄·미세먼지 등 복합적인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국격 높이는 물관리,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모든 물은 모두를 위해, 모두에 의해 관리돼야 합니다. 정부 주도의 중앙집중식이 아닌 분산형 관리, ‘모모모 물관리’가 답입니다.”

한 교수의 모모모 물관리는 홍익인간 정신과 세종대왕의 치수에 기반을 둔다. 그는 이 철학을 2026년 12월 아부다비에서 열릴 UN 워터 컨퍼런스에서 전 세계 리더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빗물 관리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노하우를 모두에게 공개해 국격을 올리는 ‘통 큰 장사’를 하자는 거죠.”

2년 전부터 한 교수는 국궁(전통 활쏘기)에 빠졌다. 매일 활터를 찾아 145m 거리의 과녁을 향해 50발 가까이 쏜다. 그런데 이 활쏘기는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다.

“국궁을 하면서 자세가 바르고, 정신이 맑아지고, 술도 멀리하게 됐어요. 활을 쏘는 자세가 곧고 단단하듯, 물을 대하는 태도도 곧고 단단해야 하죠. 국궁은 경쟁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처음엔 한 발도 못 맞혔지만, 매일 연습하며 자기 자신과 겨루는 과정이 빗물 관리와 닮았습니다.” 어른다운 책임감도 언급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진짜 어른의 자세입니다.”

또 민주적인 활터의 문화처럼, 빗물 관리 역시 위아래가 없다. 활을 쏘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그의 빗물 관리 철학과 똑 닮았다. 홍익정신부터 시작해 비와 구름, 바람까지 아우르는 그의 세계를 엿보노라면, 마치 환웅이 풍백과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내려오는 모습이 떠오른다.


▲한무영 교수가 펴내거나 감수한 빗물 관련 저서들(좌)과 세계의 빗물 음료(우) (한무영)
▲한무영 교수가 펴내거나 감수한 빗물 관련 저서들(좌)과 세계의 빗물 음료(우) (한무영)

어른답게 유산 남겨야지 ‘먹튀하지 맙시다’

그는 “비상시를 대비해 물의 비상금을 준비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며 “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물 없이는 못 산다. 빗물 저금통 하나, 논에 물을 담는 일, 아이들에게 물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일, 이 모두가 어른다운 유산”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선조에게 받은 자연의 유산을 빚지고 삽니다. 제대로 된 할아버지라면, 그 유산을 더 크게 불려서 물려줄 생각을 하겠죠. 그 재산을 지하수라고 생각해보세요. 지하수 수위가 점점 낮아져 10m를 파면 나오는 물이 20m를 파도 안 나옵니다. 우리가 다 써버리고 후손에게 남겨줄 게 없다면, ‘먹튀한 할아버지’ 소리를 듣지 않겠습니까?”

동년배인 시니어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나이 들어 현직에서 물러났다고 ‘힘이 없다’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강력한 투표권이 있습니다. 정책을 요구하고 지혜를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힘이자 값비싼 유산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한 환경운동을 넘어 세대 간 책임과 삶의 태도,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실천적 지혜로 이어진다. 한편 그는 시니어가 BTS 활동의 ‘티처’로 나서 아이들과 함께 빗물 시설을 관리하고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방안도 제안한다.

그의 삶은 ‘하늘에서 내리는 공짜 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누며 지켜나갈 것인가에 관한 질문 자체다. 그의 실험과 기발한 제안, 그리고 세대를 잇는 실천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물한다.

“빗물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비상금입니다. 먹고 튀지 맙시다. 지혜를, 자연을, 그리고 희망을 남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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