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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인생 만드는 미니멀 라이프, ‘비움’ 아닌 ‘소유’가 핵심

기사입력 2024-05-23 08:42

비움보다 새 물건 들이는 것 줄여야… 버리기 물건 주인이 결정해야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언제부터인가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여 단순한 생활 방식을 택하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함으로써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건데, 막상 집 안을 둘러보면 뭐 하나 쉽게 버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가장 좋은 것 딱 두 개만 남기고 다 버리세요!”라는 정리수납 전문가의 말에 물건 정리를 하겠노라 다짐한 김말녀(65세, 가명) 씨. 우선 오래돼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버리고 가장 좋은 걸 꺼내려고 수납장을 열었다가 ‘어머!’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온갖 종류의 프라이팬이 14개나 나왔다. 사은품으로 받아서, 누가 줘서, 홈쇼핑에서 세일해서 등 온갖 이유로 들여온 것들이 어느새 이렇게 쌓여 있었던 것.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또 뭘 샀느냐’는 남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신발장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프라이팬 하나가 더 있었다. 우스갯소리 아닌가 싶겠지만 실화다. 게다가 이건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니라고? 지금 당장 부엌으로 가 찬장을 열어보자. ‘○○은행’ 로고가 크게 자리 잡은 컵과 ‘○○카페’ 로고가 적힌 텀블러가 몇 개나 나오는지 말이다.

“모든 물건에는 이유가 있다!”

김민주 한국청소직업전문학원 이사, 이지영 새삶 대표에게 ‘왜 우리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느냐’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내가 사는 집에 있는 물건이지만 남을 생각한 이유가 붙어 있다는 뜻이다. 대개는 이런 이유다. ‘아들이 사준 비싼 가방’, ‘돌아가신 아버지가 선물한 만년필’, ‘결혼 기념으로 산 와인 잔’, ‘딸 결혼하면 줄 그릇’ 같은.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자녀에게 주려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추억하려고 등 ‘나’가 아닌 다른 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두는 물건들이다. 그렇다고 쓰임이 있는 건 아니기에 어딘가에 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아 조언한다. 나이 들수록 사람, 시간, 물건, 공간 등 정리할 게 많아진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시도해볼 수 있는 건 물건이다. 물건이 비워지면 공간도 정리된다. 공간은 나의 생활 습관이 남긴 흔적들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공간을 비우면 삶도 정리된다. 기준은 ‘나’다.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공간의 쓰임을 생각하게 된다. 그 공간에서 나의 생활이 어떤지도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람, 시간 등 내 인생도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미니멀 라이프의 장점이다.

비움에 앞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새 물건을 들이지 말라는 의미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가를 알아가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비우는 과정을 통해 소유에 관한 자신만의 기준을 다시 세우게 된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여전히 미니멀 라이프가 어려운 이들을 위한 실천 방법을 알아봤다.

1. 습관 점검하기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동선을 살펴보자. 하루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는 방도 있을 테고, 한 번도 열어보지 않는 서랍장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비싼 옷을 사도 손이 자주 가지 않으면 옷장 한켠에 자리만 차지하는 것처럼 자주 사용하는 컵, 자주 앉는 소파 자리, 자주 입는 옷 등을 보며 꼭 필요한 것의 기준을 세운다. 그러려면 집 안에 뭐가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내가 자주 쓰는 것들이 무엇인지, 저 물건은 저 자리에 얼마나 놓여 있었는지 관찰해보자.

생활 습관을 바꿈으로써 자연스럽게 정리를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식탁 위를 보자. 각티슈, 건강보조제, 볼펜, 안경, 식물 등 무언가가 반드시 놓여 있을 것이다. 모두 다 치워보자. 항상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식탁을 보다 보면 물 마신 컵을 그곳에 놓지도, 먹다 남은 피자를 그대로 두지도 않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김민주 이사는 “짐 속에 파묻혀 생활하면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게 아니라 빼앗기게 된다”면서 “나이 들면 아플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집의 쾌적함을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 주어진 공간에 만족하기

신발장을 열어보면 신발이 위아래로 서로 엉켜 있는 집이 많다. 그러고도 넘쳐서 현관에 줄지어 있다. 버림의 첫 시작은 나에게 주어진 공간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발장이 열 칸이라면 신발도 열 켤레만 있어야 한다. 비좁은 공간을 어떻게든 활용해 수납의 묘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공간을 얼마나 쾌적하게 누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버려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버리는 게 너무 어렵다면 다음 두 가지를 우선 실행해보자. 이지영 대표는 딱 세 가지를 먼저 버려보라고 조언했다. 오래된 수건, 일회용품 용기, 화장품 샘플이다. 수납장 어딘가에 지금 쓰는 수건 개수만큼의 새 수건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재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쟁여둔 일회용품 용기도 과감하게 버리자. 찬장 속 주방 용기로 충분하다. 발뒤꿈치에라도 바르려고 놔두었던 유통기한 지난 샘플 역시 버리자. 소중한 나를 위해 좋은 것을 바르겠다는 마음으로. 김민주 이사는 하루에 딱 한 가지씩 30일 동안 매일 버려볼 것을 권유했다. 30년 넘게 모아둔 물건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는 없다. 휴대폰에 ‘버림의 행복’이라는 사진첩을 따로 만들어 버린 물건은 사진으로 찍어놓는다. 시간이 지나 사진첩을 보면 ‘우리 집에 이런 물건이 있었나?’ 싶을 것이다. 꼭 지켜야 할 점은 하루에 딱 한 개만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30일은 볼펜류, 티셔츠류, 그릇류 등 하루에 한 종류를 모아 버린다. 이렇게 100일을 반복하면 어느새 집이 쾌적해졌음을 느낄 것이다.

3. 현재의 ‘나’ 생각하기

물건의 필요를 고민할 때는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나의 과거가 담긴 물건, 내 미래를 위해 비축해둔 물건을 너무 많이 쌓아둔다. 물건의 용도는 ‘쓰임’이라는 걸 잊지 말자.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은 오늘이다. 제일 좋은 것은 지금 써야 한다. 주의할 점은 다른 구성원의 기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민주 이사는 ‘내 기준을 절대 강요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가족의 물건은 해당 물건의 주인이 버릴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서로 다른 취미가 있다면 공간을 나누어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지영 대표는 “한 사람의 취향이 모든 공간을 지배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피규어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면 자리를 정해 그 공간에만 둘 수 있도록 한다. 자녀가 독립해 두 부부만 지낸다면 각 방을 자신의 공간으로 쓰는 것도 방법이다. 방의 쓰임을 꼭 침실, 옷방, 서재라는 식으로 나누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 비싼 물건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집이라는 공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들로 채우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도움말 김민주 한국청소직업전문학원 이사, ‘신박한 정리’ 이지영 새삶 대표

“물건을 정리하니 일상의 소중함이 보여요”

‘모델하우스 같다!’

김미희(61세) 씨의 집에 들어서며 받은 첫인상이다. 현관에 줄지어 있는 게 익숙한 신발도, 주방 아일랜드에 나와 있는 물건도, 거실 바닥에 늘어놓은 물건도 없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사례자를 찾아온 것이지만, 이렇게 심플할 줄이야. 본래 취향이 심플한 사람을 찾아온 건 아닐까,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김미희 씨의 집에는 딱 필요한 물건만 있다. (사진=이연지 기자)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김미희 씨의 집에는 딱 필요한 물건만 있다. (사진=이연지 기자)

“40년을 쉬지 않고 사업을 했어요.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정말 많았죠. 그때는 남을 많이 의식했던 것 같아요. 그릇도 진열해두었고, 술이 가득한 진열장도 있었죠. 또 집에 찾아온 사람을 빈손으로 보낼 수 없어 들려 보낼 선물들도 한가득 쌓아뒀어요.”

그 역시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 살았더란 이야기다. 김미희 씨는 10년 전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했다. 당시 이사할 때만 해도 물건을 버리려니 마음속 갈등이 컸다고 한다. ‘비싼 물건이라서, 정이 들어서, 갖고 싶었으니까’ 등 갖은 이유가 맴돌았다고. 그러다 2년 전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결심하고 물건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상의 소중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단다.

“어느 순간 물건들이 장소만 차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쓰지도 않는 물건인데 먼지가 쌓이니까 청소할 것도 많고요.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다 버렸어요. 집이 작아졌으니 거기에 맞게 가구도 정리하고요. 처음에는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웠는데, 집이 정리되니까 홀가분하더라고요. 이후에는 마음도 가벼워지고 인생이 심플해졌어요.”

무엇보다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김 씨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돈 버는 기계처럼 희생만 하는 삶이었던 것 같다고 표현했다. 지금은 스스로 토닥여주면서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았다’고 칭찬할 수 있게 됐다. 지나가는 꽃도 눈에 들어오고,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어르신을 돕는 오지랖(?)도 생겼다. 물건을 정리한 자리에 여유가 들어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소를 잘 못한다고 느낀 김 씨는 지난해 청소 학원을 다녔다. 청소를 배우고 나선 정리수납과 방역·소독까지 배워 자격증을 취득했다. 40년간 쉬지 않고 달렸으니 쉴 법도 한데, 이번에는 블루클린이라는 청소·방역 회사를 차리며 새로운 도전을 선언했다.

김미희 씨의 미니멀 라이프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게 많이 비웠는데도 아직 버리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옷이다.

“만 원짜리 티셔츠에 구멍이 나도 버리지 못하고 잠옷으로 입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어떤 계기가 생기면 정리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한번 비워보니 더 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인생 정리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가면서요. 이제 철드나 봅니다.(웃음)”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김미희 씨(사진=이연지 기자)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김미희 씨(사진=이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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