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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미술관 나들이

기사입력 2020-11-23 09:30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올림픽공원 정문을 들어서면 88올림픽 때 점화되었던 성화가 아직도 타오른다. 88올림픽 참가국의 국기도 바람에 펄럭인다. 드넓은 공원은 가을의 정취로 가득하다. 이곳 88호수 옆 조각공원에는 소마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관과 휴관을 거듭하다 다시 문을 열었다. 11월 10일부터 현대 구상조각의 선구자이자 4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천재 조각가 류인(1956~1999)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파란에서 부활로’라는 제목으로 전시되는 이번 기획전은 구상조각의 독보적인 작가로 활동했던 류인 작가의 15년간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예술의전당, 호암미술관 등 여러 곳이 소장하고 있는 류인 작가의 작품을 한곳에 모아 전시를 한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포스터에 담긴 작품 ‘부활-조용한 새벽’은 휘날리는 거대한 망토와 단단한 근육질 인물에서 부활을 꿈꾸는 영웅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소마미술관(SOMA, Seoul Olympic Museum of Art)은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목재를 마감재로 사용한 지상 2층, 지하 2층의 건물로 야외조각공원과 어우러지는 소통의 미술관이다.

제1전시실의 주제는 ‘흙으로부터’. 류인 작가는 작업할 때 먼저 흙으로 소조를 빚는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고 한다. 그에게 흙은 작업의 시작이자 끝을 의미했으며 조각은 곧 삶의 의미와도 같았다. 작가가 말했듯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조각에서 그 표현 방식들의 긴 여행은, 흙으로 시작해서 다시 흙으로 돌아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제1전시실은 자소상과 목우회 공모전 특상을 받은 여인입상, 심저, 입허Ⅱ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제자 원승덕이 스승을 위해 조각한 류인 초상과 작가의 연대기가 그의 생애를 엿보게 한다.

제2전시실에서는 하산과 입산이라는 주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기하학적 입방체와 사실적 인체를 결합한 작품들은 1980년대 류인 작가의 작품 특성이다. 당시 개인전에 출품한 ‘파란Ⅰ’과 ‘입산Ⅱ’ 등은 신체가 완전체가 아닌 상태로 입방체 속에 갇혀 있으면서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약을 알리듯 튀어나오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신체적 고통을 뛰어넘는 강렬한 생(生)의 의지와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제3전시실은 삶의 무대다. 이 무대에서는 한때 쓰레기더미로 산을 이루었던 난지도에 인체 조각을 던져놓거나 벽과 천장에 걸어놓는 등 다양한 실험적 모색을 하며 작품 영역을 확장한다. 작품 ‘난지도’에서 버려진 인체 조각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속성’이라는 작품은, 통관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이 아니라 근육이 불끈 솟아 있는 다리, 들어올린 팔로 표현해, 암울함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강인한 저항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제4전시실의 주제는 동시대인의 초상. 류인 작가의 조각은 그 시대 우리들의 초상이다.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깨우침이며 살아 있음의 확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가 느낀 현실과 감정의 크기는 같은 시대를 겪었던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작품 ‘급행열차’는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머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제5전시실의 주제는 ‘조각가의 혼’이다. 작가의 생애를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 조그만 소품부터 드로잉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다 보면 마치 20년 전의 그가 살아 있는 듯 느껴진다. 그동안 각종 책에 소개되었던 이야기와 류인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기까지의 사진이 짧게 살다 간 천재 작가의 발자취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실내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면 ‘부활-그의 정서적 자질’이라는 작품이 정원에 놓여 있다. 근육질의 몸매, 길게 뻗은 팔, 비장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갈망하는 듯 보이는 인체 상은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뛰어넘어 부활의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소마미술관을 찾으면 류인 작가 전뿐만 아니라 한국이 낳은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건축물 중앙에 설치된 ‘미니 쿠베르탱’은 감상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한다. 상설전시관으로 들어서면 백남준 작품의 진수를 볼 수 있는데 사진 촬영이 불가해 아쉬웠다.

이외 소마미술관 주변으로 조성된 조각공원에서는 약 222점의 조각 작품을 돌아볼 수 있다. 대부분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들어진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작품이다. 현재 생존 작가로 한국을 대표하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소마미술관 앞쪽 잔디밭에서 만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관계항-예감 속에서’라는 작품은 자연의 돌과 인위적인 철판을 자연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신과 돌과 철판의 미묘한 어긋남의 어울림으로 미지의 세계를 나타낸다.

코로나19로 우여곡절 끝에 재개관한 소마미술관을 찾아 코로나 블루를 털어버리는 것도 힐링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1956년생인 류인 작가의 작품은 1980년의 암울했던 정치 현실을 보여줘 동시대인 세대에게 작가의 고뇌를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 소마미술관 류인 展

○ 기간: 11월 10일~12월 6일

○ 위치: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424(방이동, 올림픽공원)

○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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