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슬리 이슈] 에이지 테크가 만드는 시니어의 삶은 “보호 아닌 자립”

한국노년학회는 5월 29일에 ‘초고령사회, 건강노화를 넘어 존엄한 삶으로’란 주제로 ‘2026년 전기학술대회’를 주최했다. 메인·기획·자유세션을 통틀어 총 19개 세션을 펼치며 에이지 테크, 정신건강과 보건의료, 주거 등 다양한 주제로 연구·분석한 결과를 공유했다. 왕성한 사회 활동과 함께 경제 성장을 겪은 베이비부머 2차가 시니어 세대로 진입하면서 ‘노인’에 대한 학계 연구도 다양해졌다.
기획세션에서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초고령사회 지역사회 노인돌봄체계 재구조화’를, 경희대 BK21 에이지테크 교육연구단이 ‘에이지테크 최신동향 및 트렌드’를 주제로 발표하며 초고령사회 대응 전략을 제시했다. 신진 연구자들이 참여한 신진발표 세션에서는 채주석 독거노인지원센터 선임연구원이 ‘디지털 기술’을, 박수잔 인하대 교수가 ‘정신건강과 보건의료’를, 고정은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가 ‘돌봄’을 주제로 각각 연구 성과를 공유하며 노년기 삶의 질 향상과 지속가능한 돌봄 체계 구축 방안을 모색했다.
“분리 아닌 교류” 덴마크가 제시한 노인주택 해법
‘노인이 됐을 때 어떤 형태로 살아야 할까’는 국적 불문하고 모든 시니어의 고민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집에서 살아야 하나(AIP, Aging in Place),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실버타운에 들어가야 하나 생각이 꼬리를 문다. 주거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그 가운데 명확해지는 점이 있다. 시니어 스스로 자립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공과 민간이 함께 만드는 고령자 주거 복합단지인 슬라겔세시의 ‘크베그토르베트(Kvaegtorvet)’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이 단지는 노인과 청년이 같은 생활권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단지 내에는 노인주택과 노인 생활공동체, 민간 요양원뿐 아니라 청년주택과 일반 아파트를 함께 배치했다. 세대별 주거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공용 공간과 보행 동선을 공유하도록 설계해 일상 속 세대 간 교류를 유도한 것이다.
이는 노인만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노년의 삶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제로 덴마크는 시설 중심 돌봄보다 지역사회 안에서의 자립과 사회적 관계 유지를 중시하고 있으며, 주거 정책 역시 이러한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도 노인주택을 지역사회와 분리된 시설이 아닌 개방형 생활공동체로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노인 주거를 지역사회와 분리된 시설이 아니라 청년・가족・ 지역 주민과 교류할 수 있는 개방형 주거 공동체이자 생활 복합 공간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상이 콘텐츠” 82세 유튜버의 디지털 학습
디지털 문화를 대하는 시니어들의 자세도 달라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신혜연 고려대 HRD정책연구소 연구교수는 ‘디지털 전환 시대 노인의 디지털 학습 경험의 의미’를 주제로 82세 여성 유튜버의 사례를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신 교수는 노년기 디지털 학습이 기술을 익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삶을 재구성하는 실천 과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82세 여성 유튜버는 복지관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계기로 유튜브를 시작했으며, 현재 직접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 쇼츠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콘텐츠 아이디어를 얻고 제목과 음악을 추천받는 등 디지털 기술을 일상 속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금도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시니어들이 있지만, 갈수록 디지털 문화를 활용할 줄 아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이 유튜버는 영상 제작에 따라 하루 일정을 계획하는 등 활기 넘치는 삶의 리듬을 구성하고 있었다. 유튜브 활동이 노년기 일상 운영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는 노년기 디지털 활용이 단순히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사회와 연결되고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생성형 AI 등 새로운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니어를 디지털 수혜자가 아닌 디지털 사용자로 바라봐야 한다는 인식 변화도 확인됐다.
신 교수는 유튜브 활동이 노인의 자기표현과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그는 “노년기 디지털 학습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아니라 일상과 정체성, 삶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는 경험”이라며 “디지털 기술을 통해 노년기 삶의 가능성이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할 돌봄
사회·정책적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할 돌봄에 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윤환 한국노년학회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이번 학술 대회를 “건강과 돌봄을 같이 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빠른 고령화로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인 시대에 들어섰고, 베이비붐 세대가 빠르게 고령인구에 진입하고 있다”며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건강수명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어 앞으로의 돌봄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앞선 연구들이 노년의 자립과 사회참여 가능성에 주목했다면, 돌봄 연구는 초고령사회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학계에서는 자립과 돌봄이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존엄한 노년을 위해 함께 갖춰져야 할 요소라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 회장은 특히 최근 시작된 지역사회 통합 돌봄에 주목했다. 그는 “통합 돌봄이 올해 원년을 맞은 만큼 의료·요양·돌봄·주거・생활을 아우르는 통합적 제공 체계 구축이 매우 필요하다”며 “근거 중심의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이어 “초고령사회를 맞아 정책 근거 생산, 통합 돌봄의 제도화, 다양한 모델 구축이 시급한 현실”이라고 밝혔다.
노년의 존엄과 인권 보장도 학회에서 공감대를 얻었다. 최성재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이사장은 “건강 노화는 단순히 질병을 예방하고 신체적·인지적 기능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총체적 시각에서 재조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학술 대회는 초고령사회가 맞이한 새로운 과제를 보여줬다. 노인을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자립과 참여, 교류와 존엄을 중심에 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건강과 돌봄, 주거와 사회참여를 아우르는 정책적 기반 마련 역시 중요하다는 점에 학계가 뜻을 모았다.
관련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