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탐방] 아모레퍼시픽미술관 ‘APMA, CHAPTER FIVE’
전통과 현대를 잇는 문화공간
한여름의 도시는 뜨겁다. 멀리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도심에서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는 계절이다. 그럴 때 미술관은 꽤 좋은 피서지가 된다. 바깥의 소란과 열기를 잠시 내려놓고, 차분한 전시실 안에서 계절을 잊을 수 있어서다.
이번에 찾은 곳은 서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Amorepacific Museum of Art)이다. 미술관은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선대회장이 한국의 전통을 지키고 알리기 위해 공예품과 도자기를 수집한 데서 출발했다.
1979년 태평양박물관으로 문을 열었고, 2008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2018년에는 용산에 새롭게 개관하며 한국 고미술과 현대미술, 해외 미술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미술관이 자리한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축도 눈길을 끈다.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이 건물은 빌딩 숲 사이에서 단정하면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화려하게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편안한 인상을 준다. 1층 로비와 미술관, 뮤지엄숍, 라이브러리 등이 이어져 있어 전시를 보기 전후 천천히 머물기에도 좋다.
소장품으로 펼쳐낸 현대미술의 다섯 번째 이야기
20년 만에 다시 공개된 백남준 '절정의 꽃동산'
현재 미술관에서는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FIVE - FROM THE APMA COLLECTION’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총 7개의 전시실을 따라 이어지며, 40여 명의 국내외 작가와 80여 점의 회화·사진·조각·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그동안 쌓아온 수집과 연구의 흐름을 보여주는 다섯 번째 소장품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제 현대미술의 흐름과 한국 현대미술의 맥락을 함께 볼 수 있다.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과 현대미술의 중요한 전환을 이끌어온 작가들의 작품이 나란히 놓여, 예술적 실험이 어떻게 쌓이고 변화해왔는지 생각하게 한다.
특히 제4전시실에서는 백남준의 초대형 설치 작업 ‘콘-티키’와 함께 2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절정의 꽃동산’을 만날 수 있다. 꽃과 식물, TV 모니터가 한데 어우러진 거대한 작품 앞에 서면 잠시 압도되는 기분이 든다. 마치 백남준이 상상한 미래의 정원 한가운데 들어선 듯하다.
올여름 바쁜 도심 속에서 잠시 더위를 잊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다섯 번째 장을 넘겨봐도 좋겠다. 시원한 전시실을 천천히 걷는 동안 현대미술이 건네는 낯선 질문과 뜻밖의 여운을 만나게 될 것이다.
주요 작품

백남준, ‘절정의 꽃동산’, 2000
백남준은 TV와 비디오를 예술의 재료로 끌어들여 비디오아트를 하나의 장르로 세운 세계적인 작가다. ‘절정의 꽃동산’은 꽃과 식물로 이뤄진 구조물 안에 TV 모니터를 배치해 자연과 기술이 함께 숨 쉬는 공간을 만든 작품이다. 모니터에서는 ‘글로벌 그루브’가 재생되며 음악과 춤, 이미지가 뒤섞인 리듬이 꽃동산 전체로 퍼져나간다. 작품은 자연과 미디어를 대립하기보다 하나의 생태적 풍경 안에서 공존하게 한 백남준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데이비드 호크니, ‘카리브해의 티타임’, 1987
데이비드 호크니는 회화·사진·판화·무대 디자인을 넘나들며 ‘보는 방식’을 탐구한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카리브해의 티타임’은 바다와 야자수, 찻잔 등이 놓인 장면을 석판인쇄로 제작한 병풍 형태의 작품이다. 호크니 특유의 경쾌한 색감과 콜라주적 구성은 카리브해의 여유로운 공기까지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최근 별세 소식으로 그의 작품 세계가 다시 조명되는 가운데, 이 작품은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는 호크니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백남준, ‘콘-티키’, 1995 (10:30~12:30, 13:30~17:40에만 비디오 운영)
‘콘-티키’는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노르웨이 탐험선 이름에서 유래돼,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처음 소개됐다. 53대의 TV 모니터에는 거북선·미켈란젤로·다양한 배를 소재로 한 영상이 흐르고, 앤티크 TV 박스 안에는 인형·불상·흑백사진 등 국적과 문화를 초월한 오브제들이 자리한다. 동양과 서양, 과학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디어 환경 속에 예술-기술-사람의 관계를 드러낸다.

이불, ‘비밀 공유자’, 2012
이불은 개인과 사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탐구해온 한국 현대미술 작가다. ‘비밀 공유자’는 작가가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견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조각상의 입에서 쏟아지는 크리스털 파편은 사라진 존재와 나눈 교감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빛을 반사하는 크리스털과 유리는 주변 공간과 관람자의 모습까지 함께 비추며, 개인적인 상실을 기억과 존재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한다.

로버트 인디애나, ‘러브’, 1966~1999
로버트 인디애나는 숫자와 단어 같은 일상의 언어를 선명한 색채와 기하학적 구성으로 바꾸어낸 미국 팝아트 작가다. ‘러브’는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크리스마스 카드 디자인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네 개의 알파벳을 정사각형 안에 배치하고 ‘O’자를 기울인 구성이 특징이다. 단순한 단어였던 LOVE는 이 작품을 통해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이자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상징으로 확장되었다. 이 작품은 뉴욕 맨해튼 55번가에 설치된 작품과 동일한 에디션이다.
‘APMA, CHAPTER FIVE – FROM THE APMA COLLECTION’ 전시 정보기간 8월 2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 시간 10:00~18:00(홈페이지 온라인 사전 예약)
장소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100 /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1번 출구에서 지하 연결통로를 통해 아모레퍼시픽 사옥으로 진입
관람 요금 1만 3000원
전시 해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MA GUIDE)을 다운로드해 무료 청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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