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당신의 버킷 리스트를 지금 적어라

2007년 영화 ‘버킷 리스트(Bucket List)’의 주인공은 대형 병원 체인을 소유한 억만장자 병원장 에드워드(잭 니컬슨)와, 평생 가족을 위해 자동차 정비공으로 살아온 카터(모건 프리먼)이다. 역사학자의 꿈을 접고 묵묵히 가족을 부양해온 카터, 부와 권력을 지녔지만 딸과 오래전 남남이 된 에드워드의 공통점은 둘 다 말기암 환자라는 거다. 같은 병실에 누운 두 사람은 어느 날 종이 한 장을 꺼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기 시작한다. 문신, 낯선 땅에서의 드라이브, 스카이다이빙…. 그리고 세계를 누비며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간다.
영화의 진짜 클라이맥스는 스카이다이빙이 아니다. ‘가족과의 화해 없이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며 딸과의 만남을 권한 카터 덕분에, 에드워드가 오랫동안 등졌던 딸을 찾아가 처음 만난 손녀에게 뽀뽀하는 장면이다. 그 순간 그는 버킷 리스트 한 항목을 조용히 지운다. ‘세계 최고의 미인과 키스하기.’
영화는 말한다. 죽기 전 해야 할 일은 특별한 모험이 아니라, 미뤄둔 사랑을 완성하는 일이라고.
죽음을 눈앞에 둔 것처럼 살아야 비로소 제대로 살게 된다는 역설이 있다. 시한부 판정이 삶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돌려주는 것이다.
‘버킷 리스트’라는 말은 원래 으스스한 어원을 갖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교수형을 집행할 때 사형수가 올라선 통(Bucket)을 발로 차던(Kick the Bucket) 장면에서 나왔다. 사형 집행 직전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던 그 관행이 이 단어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말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적어두는 인생 설계도가 된 것이다.

영국의 코미디언 데이브 이스마이는 2010년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는 7가지 버킷 리스트를 작성했다. 손자와 더 놀아주기, 벤츠 신차 구입, 팬터마임 출연, 아내와 호주 여행, 아일랜드 골프장 라운딩 등 재산을 쏟아부어 그 목록을 거의 다 이뤘다. 그런데 10주 뒤 그 판정이 오진으로 밝혀졌다. 경제적 손실은 컸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제대로 살았다”고 말했다. 죽음이 삶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삶을 돌려준 것이다.
적는 것에는 힘이 있다. 다윈의 ‘적자생존(適者生存)’은 원래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요즘 시니어들은 이 말을 ‘적어야 생존한다’는 의미로 바꿔 읽는다.
2007년 도미니컨대학교 게일 매튜스(Gail Matthews) 교수가 267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목표를 글로 쓰고 지인과 공유하며 매주 진행 상황을 보고한 그룹은 목표를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그룹보다 평균 33% 더 높은 달성률을 기록했다. 꿈을 머릿속에만 담아두는 것과 종이에 적어 눈앞에 두는 것. 그 사소한 차이가 그토록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로 미국의 탐험가 존 고다드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젊었을 때 했더라면”이라고 말하는 어머니와 이모의 후회를 듣고 15세에 ‘나의 인생 목표’라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었다. 놀랍게도 그는 127개 목표 중 대부분을 달성했다.
버킷 리스트가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인생 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쿼블러 로스는 두 가지를 늘 물으라고 권한다. 첫째, 내 삶의 기쁨은 무엇인가. 둘째, 나는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가. 이는 버킷 리스트가 나 혼자만의 소원 목록이 아니라, 내가 기쁘고 그 기쁨이 주변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 하겠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말이다.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는다. 사람은 결심하고 72시간 안에 시작하지 않으면 대부분 영영 하지 않는다.
오늘 저녁, 종이 한 장을 꺼내라.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가보고 싶은 곳을 적어보라. 오래 연락 못 한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먼저 드리는 것, 동네 꽃집에서 화분 하나 사는 것도 버킷 리스트가 될 수 있다. 적는 순간 막연한 꿈은 구체적인 목표가 된다. 목표가 생기면 삶의 방향이 생겨 이루게 된다.
웰다잉(Well-dying)이란 잘 죽는 법이 아니다. 죽음을 의식하면서 잘 사는 법이다. 당신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인가? ‘언젠가’는 없다. 지금 당장, 여기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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