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잘 지내? 내 친구 고래에게 안부를 전해. 그 인사조차 전하기 미안해. 하루 중, 어둠이 따라 오는 저녁에, 사람이 불 밝힌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컴컴해지는 바다에 혼자 남은 친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사무쳐.
친구가 떠나버린 텅 빈, 이름만 거창한 ‘울산바다 고래바다’를 둘러보고 온 날 저녁에 더욱 그래. 친구가 ‘바다의 로또’라는 사행성 이름으로 사람의 그물에 생명을 잃어버린 뉴스가 보이면 더욱 그래. 미안해 정말. 절대 사람을 용서하지 마.
친구는 알고 있을 거야. 최근 일본이 IWC(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국제포경위원회) 탈퇴를 선언했어. 그건 고래를 마구 살상하겠다는, 바다를 고래의 붉은 피로 다 적시겠다는 야만이야.
동해에 주소 두고 사는 친구의 생명이 더욱 위험해졌다는 이야기야. 일본이 동해 우리 고래까지 씨를 말리겠다는 속셈인 거야. 고래를 사랑하는 사람이 모여 지켜낸 바다 자원인 고래를 자기 밥상에 올리겠다는 ‘도둑질’이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어. 그러나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어. 일본은 바다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생명’인 ‘고래와의 전쟁’을 오래전부터 계속하고 있었어. 친구도 알지?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징용 보상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듯이.
일본은 친구에게 전쟁 시작을 알렸어. 그건 고래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에게 ‘선전포고’를 한 거야. 이건 침략이야. 고래가 사는 바다를 자신의 ‘바다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거지. 집단학살이 예고됐어. 친구를 위해 세계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세계의 많은 고래보호단체에서 일본을 규탄하고 바다에서 일본의 만행을 막을 거야. 울산에서 고래를 지키는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도 행동에 나설 거야. 오랫동안 친구에게 사랑과 위로 시를 보내온 나 역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친구를 겨누는 포경선의 포를 더욱 조심해. 일본이 ‘연구선’이란 미명의 포경선에 ‘히노마루(일장기)’를 펄럭이며 나타날 거야. 아비를, 어미를, 아기를, 가족을 모두 죽일 거야. 그건 살생이야.
바다의 국경선을 모르고 사는 자유로운 고래가 일본의 바다에 들어서면, 고래 야만국 일본이 다이치에서 수천수만 마리 돌고래 떼를 학살하듯, 자신의 국기 색깔 같은 고래 피를 시뻘겋게 보여줄 거야.
친구는 참을 수 없는 소리로 항변하겠지. 우리 사이에 언제 평화로운 시절이 있었냐고. 그 말 맞아. 인류가 처음 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출항한 날부터 우리는 쫓고 쫓기는 사이가 되고 말았어.
하지만 뜻있는 사람이 많아져 무분별한 술래잡이를 용서하지 않은 지 오래됐어, 사람의 야만은 즉시 중단돼야 해. 사람은 바다의 주인이 고래라는 것을 알아야 해. 사람은 사람의 죄를 알아야 해. 바다를 향해 절하며 용서를 구해야 해.
지구는 바다 면적이 70%를 차지하는데, 30%의 면적을 받은 육지 사람은 너무 오만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바다는 지구의 면적 70.8%를 차지한다지. 면적으로 보면 2.43배이고, 부피로 보면 13억7000만㎦에 해당하지.
이 넓은 곳에서 친구와 나는 참으로 미세한 존재야. 미세하지만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포유류’이기 때문이라 생각해. 서로 새끼 낳고 젖 먹여 키우는, 자식의 아비이고 어미이기 때문인 거지.
고래와 사람은 친구가 돼야 해. 그것이 바다에서 우리가 함께 사는 유일한 방법이야. 사실 멸종보호동물인 친구를 여전히 해양수산부가 관리하는 ‘생선대접’에 화가 나. 친구는 ‘환경부’가 지켜줘야 하는 ‘바다의 주인’이야. 귀한 생명이야.
‘고래도시’라는 내가 사는 울산을 봐도 짜증이 나. 여전히 고래는 ‘고래 고기’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울산에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때와 고래잡이가 중단되고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을 비교하면 고래 고기를 파는 식당이 200배 이상 늘어났어.
바다는 사람에게 소금을 비롯해 참으로 많은 선물을 주고 있어. 친구도 큰 선물이지. 고래는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친구인데 ‘먹거리’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돼. 70년을 살며, 10개월을 임신해서, 자식을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고래는 우리의 바다 자화상이야. 고래의 멸종은 인류 멸종의 예상 시나리오가 될 거야.
친구 고래. 친구는 여러 해 내가 울산광역시 고래목측조사에 참여한 것을 알 거야. 바다에서 눈으로 친구를 찾는 일이지. 내 소원은 울산에 멋진 ‘고래보호조사선’이 생기는 거야. 그리고 예술가들이 함께 배를 타고 나가 고래를 찾는 거야. 고래를 만나는 즐거움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
음악가에게는 고래의 노래를 들려주고, 춤꾼에게는 고래의 춤을 보여주고 싶어. 화가에는 고래의 역동적인 힘을, 아동문학가에는 고래의 동심을, 시인에게는 고래의 에스프리를 다 보여주고 싶어. 예술가들이 진정으로 고래의 작품을 만들어 관객과 독자를 만난다면 너도나도 다투어 고래 친구가 되려고 할 거야. 그때 바다에서 만날 수 있겠지, 친구.
최근에 읽은 케이틀린 셰털리의 GMO(유전자조작식품) 위협에 대한 보고서 ‘슬픈 옥수수’에 이런 구절이 있어. “사실상 땅의 운명과 사람의 운명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바다를 오염하고 죽은 고래 뱃속에서 비닐이 무더기로 나오게 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말하고 싶어. “고래가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어!”
친구 고래.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 있어. 온전하게 일흔 해 천수를 살며 다시 만나길.
정일근 시인
1984년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외 다수가 있다. 소월시문학상, 영랑문학상, 지훈문학상, 이육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1992년부터 고래도시 울산에서 살며 ‘고래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모임 대표 시인’으로, 고래보호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