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의 그림 이야기]
언젠가 ‘한국 미술을 몇 마디로 집약하는 표현은 무엇일까’라는 화제(話題)가 떠오른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서슴지 않고 ‘검이불루 화이불치(檢而不陋 華而不侈)’를 꼽았다. 그의 근작 ‘안목(眼目)’의 첫 대목도 그렇게 시작한다.
얼마 전 필자는 일본 최고의 명품관임을 자랑하는 도쿄 와코(和光)백화점에서 일본 도예가 이노우에 만지(井上萬二)의 작품 전시를 우연히 관람한 적이 있다. 전시회에서 내건 화제가 ‘잡스러움이 없는 명품 도자기(名陶無雜)’라서 필자의 흥미를 더욱 자아냈다. 널찍한 공간은 다양한 도예 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울러 흰색이 전시장 전체를 압도하는 분위기가 ‘잡티 없는 것’을 추구한 작가의 예혼(藝魂)을 뒷받침하고 있는 듯했다. 방문객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전시장을 나오며 필자는 왠지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전’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화려한 작품으로 가득한, ‘흰빛 넘치는 공간’이 오히려 무겁기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문득 ‘달항아리’의 자태가 떠올랐다. 상기 전시 제목이 말하는 ‘잡것 없는 백자’와 우리네 ‘잡것 없는 백자’에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둘을 비교하다 보니 자연스레 대부분의 우리네 국보급 백자 ‘달항아리’는 흰색이면서도 광채를 배제한 무색(無色)이라는 게 생각났다. 이것이야말로 둘의 ‘작지만 큰 차이’인 듯싶었다.
우리의 옛 도공은 흰 빛깔(光體)도 ‘무잡(無雜)’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나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말이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기원전 4년) 기사에 나오는 걸 보면 이는 면면이 이어온 우리 민족의 오랜 ‘예술적 정서’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