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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투 효과’

기사입력 2017-11-27 17:51

필자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동네 당구장 회원이다. 몇십 년 전 당구를 처음 배우고 그때의 점수대를 유지하고 있다. 몇십 년 동안 실력이 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려 독학으로 배우다 보니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해 기초가 약하다. 그 바탕에서 가장 높은 점수가 지금이다. 획기적인 전기가 없으면 실력이 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거의 매일 당구를 치면서 실력이 좀 늘었다. 그렇다고 점수를 올리면 소위 ‘물당구’가 된다. 그리고 점수를 올리려면 여러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특히 같은 점수대 사람들이 실력을 인정해줘야 한다. 이기는 확률이 높다면 당연히 올려야 한다. 그러나 당구는 칠 때마다 다르다. 이기기도 하고 질 때도 있다. 그러니 못 올리는 것이다.

사실 점수를 올리는 것은 별것 아니다. 200점이 250점을 치려면 20개에서 5개를 더 쳐야 한다. 다섯 개 정도는 운 좋으면 한 큐에 다 친다. 초구가 잘 맞으면 5개 정도는 치고 들어간다. 그러면 올리기 전과 같은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가 먼저 자기 점수를 다 치고 마지막 관문인 3쿠션을 돌리고 있어도 한 큐를 믿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다.

점수를 올리지 않는 것을 겸손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점수를 올리고 매번 지는 것보다는 하수라며 겸손을 떠는 것이다. 물론 너무 짜다고 소문나면 욕을 먹기도 한다.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끔 너무 짜다며 점수를 올리라는 원성을 듣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같은 점수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올릴 수 없다. 사실 같은 점수대 사람들에게 압승을 거두면 인정을 받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서로 물고 물리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모아 치는 공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이 힘들어 한다. 반면에 상대방이 모아 치는 스타일이면 잘 치는 날에는 모아 쳐서 득을 보기도 하지만, 실수할 경우 필자에게 고스란히 바치는 꼴이 되어 지기도 한다.

그래서 새해를 맞아 회원들 모두 같이 올리기로 했다. 150은 모두 200으로, 200은 250으로 말이다. 물론 ‘물당구’가 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동반 자살’을 하자는 셈이다. 그러면 불만이 없을 거라는 주장이다. 점수를 올려서 치다 보면 확실히 실력은 좋아진다. 한 큐에 더 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점수를 내려놓으면 더 치고 싶어도 못 치는 것이다.

150이 200으로 점수를 올리면 그전에 도전하지 못했던 3쿠션에도 합류할 수 있다. 어느 당구장이든 ‘300 이하 맛세이 금지’라고 써놓아 자신도 모르게 맛세이를 포기했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다. 200이 250으로 올리고 나면 일단 4구에서는 공을 모아 치는 연타에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3쿠션에서도 10개에서 13개 정도로 올릴 수 있다. 같은 당구장에서는 서로 마찬가지이지만, 바깥 당구장에서는 한동안은 올린 점수만큼 감당하지 못해 질 때가 많다.

이것이 바로 ‘감투 효과’다. 어떤 자리에 앉게 되면 그만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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