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기자 페이지] 벗에 대하여…
“오늘도 일하러 가세요? 점심이나 간단히?”
“점심 같이 먹자. 내가 살게. 나이 들어갈수록 지갑을 자주 열어야 한대. 먹고 싶은 음식 있으면 미리 생각해두렴.”
“네~ 12시에 제가 차 가지고 모시러 갈게요. 310동 도로에서 뵈어요.”
그렇게 만나 함께 낙엽 쌓인 율동공원을 산책하며 가을날 오후를 즐겼다.
K와의 인연은 2년 전쯤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열린 미술관음악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날 음악회 무대에 올려진 슈베르트의 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를 잘 듣고 집으로 가는데 역시 음악회에 참석한 그를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만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고 그 후 선후배로, 멘토·멘티로, 부담 없는 이웃으로 가깝게 지냈다.
K는 50대의 모태솔로다. 성악을 전공한 음악도였는데 뜻한 바가 있어 대학 졸업 후 10여 년간 금융기관에서 일했다고 한다.
경제력도 빵빵해 아파트는 물론 상가를 서너 채나 보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쓰는 알뜰형 인간이다.
현재 사설 합창단 대표, 복지관 어머니 합창단 강사, 성가대 지휘 등 돈 안 되는 일도 많이 하고 있다. 명함을 내밀 만한 직업은 딱히 없지만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에 어지간한 조건은 다 갖추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한 가지, 건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신경정신과 치료를 10년 넘게 받고 있는 조현병 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기복이 심해 기분이 괜찮을 때는 한없이 좋았다가 날씨가 흐리거나 하면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필자가 K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밖에 없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필자가 K와 친구가 된 것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필자와 K 두 사람 모두 한 번도 결혼 경험이 없는 모태솔로라는 점이다. 둘째, 음악·미술·연극 등의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도 비슷하다. 또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를 더 쉽게 친구로 만들어줬다.
한번은 혼자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K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으로 라면을 먹으려 한다고 말하니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밥 한 공기를 어느새 들고 와 내민다. 라면 국물에 밥 말아 맛있게 먹으라면서.
또 어느 날은 텃밭에서 수확한, 흙냄새가 아직 코끝으로 풍겨오는 싱싱한 고구마 한 보따리를 불쑥 내밀며 심심할 때 쪄서 드시란다. 고마운 마음이 가득해지는 친구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가끔씩 필자의 근황을 궁금해하고 미래도 걱정해주는 친구 K가 있어 올겨울은 덜 쓸쓸할 것 같다. 너무 자주도 아니고 너무 뜸하지도 않게 보내오는 카톡도 그래서 더 반가운지 도 모르겠다.
‘내가 너인 듯싶고 네가 나인 듯싶은 내 마음속 풍경’ 같은 그런 벗이면 좋겠다. 500m 떨어진 곳에 사는 K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