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깨달음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기사입력 2017-08-10 17:18

▲마음을 치유해준다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박혜경 동년기자)
▲마음을 치유해준다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박혜경 동년기자)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필자 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해당이 안 되는 말인 줄 알았다. 부처님이나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성현이나 훌륭한 사람들이 얻는 고귀한 생각일 거라고만 짐작했다.

친한 친구 삼총사 중 한 명인 이 여사는 독실한 불자다. 그래서인지 폭넓게 우리를 포용해주고 마음 씀씀이가 컸다. 그녀는 집에서 가까운 절에 열심히 다니기도 하고 가끔은 템플 스테이도 한다. 그러면서 템플 스테이에 언젠가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절에서 깨달음을 얻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깨달음이란 정말 훌륭한 분들이나 얻는 건 줄 알았는데 보통의 불자도 이 행사에서 깨달음을 많이 얻는다는 것이었다. 벽을 보고 앉아 묵언 수행을 하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스님과 면담 후 나오면 되지만 무언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깨달음이 올 때까지 계속 벽을 보고 앉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와 이 행사에 참여한 한 지인은 온종일 앉아 있어도 깨닫는 게 없어 중도 포기했다고 했다.

그게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닐 텐데 우리의 이 여사는 묵언 수행을 한 지 얼마 안 돼 무언가 깨닫고 스님께 이야기했더니 합격점을 주셨다고 한다. 그게 무어냐고 물어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며 자기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필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불심이 깊은 그녀에게는 가능한 일인가보다 했다.

어느 날 우리 삼총사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마크 로스코’ 그림 전시회에 갔다. 잘 알고 있는 작가는 아니었는데 안내장에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라는 소개가 있었다. 잭슨 폴락과 함께 현대 추상화의 양대 거장으로 불리며, 현대화가 중 세계에서 그림 값이 가장 비싸다는 ‘마크 로스코’의 대형 유화 작품 50점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였다. 실제로 그림 한 점 가격이 1000억원에서 2000억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전시회의 보험평가액도 국내 전시회 중 사상 최대 규모인 2조 5000억원이었다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작가였다.

(마음을 치유해준다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관람객들이 근원적 감정과 만나 눈물을 흘리도록 하는 특별한 치유력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그저 어느 집 벽에 장식품으로 걸리기를 원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보면서 위로받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크 로스코’ 전시장에는 그림 앞에 방석을 놓아 사람들이 그곳에서 그림을 보며 명상할 수 있게 해놓았다.

필자 친구 이여사도 그 방석에 잠시 앉아 보았는데 그림에서 무언가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필자는 아무리 보아도 빨간색이나 검은색이 칠해진 캔버스로만 보였는데 깨달음을 아는 친구는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필자도 삶에서 뒤늦게 깨달은 바가 있기는 하다. 사소한 일로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며칠간 냉전을 벌일 때 그처럼 답답하고 불편한 시간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씩만 양보하고 조심하면 그럴 일이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필자의 아들이 어렸을 때 학교 성적 좀 좋다고 천재인 줄 알고 회초리까지 들어가며 억지로 공부를 시켰던 적이 있다. 공부는 정말 하고 싶은 아이가 해야 하고 억지로 시키는 공부는 소용이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것도 하나의 깨달음일 것이다.

젊었던 시절 오만과 착각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자꾸 백미러를 통해 필자를 흘끔거리며 쳐다봤다. 필자는 속으로 ‘내가 예뻐서 그러나?’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결혼 후 장롱면허를 꺼내 들고 운전을 시작하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운전을 하다 보면 당연히 백미러를 봐야 했던 것이다. 그때 택시 운전기사가 필자를 보려고 흘끔거린 게 아니었다는 걸 알고는 몹시 부끄러웠지만 그것도 아주 작은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은 성현이나 훌륭한 분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라도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이제야 알겠다. 사소한 일이라 해도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의미에서 깨달으며 사는 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기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기사

  • 중장년의 '어른 공부'를 위한 공부방, 감이당을 찾다
  • 중년 들어 자꾸만 누군가 밉다면, “자신을 미워하는 겁니다!”
  • “은퇴 후 당당하게” 명함 없어도 자연스러운 자기소개법은?
  • ‘낀 세대’ X세대 무거운 짐, 홀가분하게 나누는 법

브라보 추천기사

브라보 테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