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휴학을 하고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취업에 도움이 될지 졸업생 신분이 취업에 도움이 될지 잠시 망설였지만 정도를 걷겠다며 졸업의 길을 택했다. 백수가 뭐 별것인가. 취업하지 못한 젊은 놈이 백수다. 아들은 취업한 후 대학 문을 나서겠다고 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하자마자 취업을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세월에 떠밀려 백수 신분으로 졸업장을 받게 됐다.
밤낮으로 도서관에도 다니고 인터넷으로 이곳저곳 조회하며 취직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보다 내가 더 초조해져갔다. 이러다가 내 아들이 영영 백수인 채로 캥거루족이나 빨대족이 되는 것은 아닌가 덜컥 겁도 났다. 신문에서 취업을 못해 절망한 젊은이가 자살했다는 내용을 읽고 얼마나 섬뜩했는지 모른다. 어느 날 술에 취해 필자는 속마음을 아내에게 토해냈다. “백수인 아들을 보니 애비로서 마음이 답답하다. 너무 힘들다.”라고 넋두리를 했는데 아들이 제 방에서 귀동냥으로 애비의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아들은 내게 편지를 건네주고 도서관으로 나갔다. 내용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아버지 실망시켜드려 정말 죄송해요. 지금까지 25년이나 저를 믿고 기다려주셨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궁하다고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곧 좋은 소식 드리려고 저도 노력하고 있어요.”
자식의 마음고생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못했던 필자는 그저 눈물이 핑 돌았고 아들의 마음고생이 더 심할 텐데 술 마시고 그런 말을 한 자신이 어른스럽지 못해 많이 미안했다.
4월의 어느 날, 아들은 기다리던 합격 전화를 받았다. ‘합격’이란 말,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인가. 전화기 너머로 아들의 씩씩한 음성을 들으며 생애 최고의 순간처럼 기뻤다. 아들의 인생은 아들의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라는 생각을 평소 해왔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었따. 아들의 합격소식에 필자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마침 아들의 학교에서 졸업생 취업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전화가 합격 통지를 받은 당일에 온 모양이었다. 당당하게 취업했다고 하니 조사원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었단다.
청년 백수인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모두 타들어갈 것이다. 우리가 젊었던 시절에는 공장도 많고 자동화도 덜되어 인력이 많이 필요했고 취직도 잘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상의 은덕이 있어야 취직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예전에 100명이 하던 일이 기계화, 자동화하면서 인력은 불과 3~4명이면 충분하다. 그나마 있는 공장도 경제성을 따져 해외로 이전시키고 있다. IT 산업과 서비스 업종은 늘어났지만 굴뚝산업의 인력 감소는 막아내기 어렵다. 직업의 종류는 늘어나도 직장은 줄어든다. 고용 없는 경제성장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들이 군대에 갔다 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도 했으니 애비의 성공, 필자의 성공이라고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