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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기사입력 2016-10-17 11:23

▲자화상(변용도 동년기자)
▲자화상(변용도 동년기자)
김장철이 다가온다. 배추와 무가 싱그럽게 쑥쑥 키를 키운다. 아침저녁의 손이 시릴듯한 날씨에 서서히 깊은 맛이 들어간다. 이웃 할머니가 가꾸는 마을 입구에 있는 밭의 무도 땅 기운을 받고 어제와 눈에 띄게 다르다. 지난봄 야외 사진 촬영을 나갔다가 들녘 밭에서 발견했던 또 다른 모습의 무를 사진으로 담았던 기억이 난다. 서두의 사진이 그것이다. 필자는 그 형상에서 인생 2막을 맞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진의 제목을 “자화상”이라 정했다. 베이비붐 세대와 그 이전 세대들은 자신을 늘 뒷전에 두며 싫은 일도 마다 않고 가족이나 직장을 위하여 헌신함으로써 등골이 다 빠졌다. 그 모습을 빈틈없이 닮았다.

사진의 대중화 시대를 살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고 공유한다. 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카메라 장치가 들어가면서 대중화는 급속히 앞당겨졌다. 사용자의 편리를 위하여 놀라울 정도로 기능도 좋아져 더 그렇다. SNS, 즉 소셜 미디어 시대의 삶에 사진은 예술의 한 분야에서 영상언어로 발전하고 있다. 셔터만 누르면 사진은 찍힌다. 침팬지도 사진을 찍는다고 말할 정도다. 대충 찍을 수 있어도 어떻게 찍어야 좋은 영상언어가 될까를 고민함도 바람직하다.

사진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의도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흔히 말하는 메시지 담기다. 필자는 사진을 찍으려고 준비할 때 먼저 생각하는 일의 하나다. 어떻게 보면 머릿속에 써 내려 가는 촬영 노트인 셈이다. 야외 촬영을 준비하면서 기획한 내용의 하나가 베이비붐 세대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해보자는 것이었고 그런 사진 한 장을 밭에 버려진 무에서 찾았다. 앞의 사진이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무엇으로 보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연근”이라 답한다. 사실 그렇게 보인다. 듬성듬성 비워진 모습이 연근을 잘라 놓은 것과 흡사해서다. 농부가 수지가 맞지 않아 밭에 그대로 버려두어 한겨울을 지내면서 바람이 든 무의 중간을 뚝 잘라본 단면이다. 마치 인생 1막을 마감하고 인생 2막을 맞으려는 세대들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젊음을 다 바쳐 열심히 일해 왔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사회와 국가, 가족에게 헌신하고 남은 내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같아서다. 자식의 교육이나 결혼자금 또는 자녀 사업자금으로 다 쓰고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등골까지 다 빨린 세대의 모습을 빼닮았다.

필자는 이 한 장의 사진을 대중과 공감하는 영상언어로 활용한다. 인생 2막에서는 비워진 그곳에 생업에 밀려 하지 못하였던 꿈을 이루는 자아실현으로 채워가야 함을 은근 슬쩍 강요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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