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일링(당시 7세)에게는 대학 졸업 시까지의 학자금으로 내 주식의 배당금에서 1만 달러를 준다. 아들 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딸 재라에게는 유한중·공고 안의 (내) 묘소와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준다. 아내 호미리는 딸 재라가 노후를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 내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1971년 봄에 별세한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柳一韓·1895 ~1971) 선생이 남긴 유언장의 일부이다. 유일한은 9세 때 미국으로 가서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식품회사를 세워 크게 성공했다. 1926년 31세의 나이로 한국으로 돌아와 안정적인 교수직을 마다하고 가난과 병으로 신음하는 동포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약을 제공하는 것이 더 급하다면서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이런 유일한을 우리들 대부분은 청빈한 기업가로만 알고 있지만 온몸을 던져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미국 네브라스카주에 세운 ‘한인소년병학교’를 다닌 이후 투철한 애국심과 민족 사랑으로 일생을 살았다. 일제의 압박이 거세진 1930년대 후반에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산하 한인국방경위대 ‘맹호군(猛虎軍)’의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전략정보처(OSS)의 한국 담당 고문으로 활약했다. 1945년에는 재미한인들을 훈련시켜 국내에 침투시키는 ‘냅코 계획(Napko Project)’의 행동대원으로 직접 참여했다. 기업 경영은 물론 필요하다면 조국과 동포를 위해 온몬을 던지려 했던 유일한의 애국심과 충정, 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영원할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유일한 외에도 우리는 예부터 내려오는 부자들의 훌륭한 전통과 아름다운 선행을 많이 알고 있다. 10대 300여년을 이어온 경주 최부자댁, 정직과 신의로 돈을 벌어 가난을 구제한 거상(巨商) 김상옥, 조선의 첫 여성 CEO 겸 자선가 김만덕, 일제강점기 시절 평양의 고결한 여성부자 백선행 등이다.
“저한테는 기부가 자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입니다.”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의 1호 회원인 남한봉 유닉스코리아 회장의 말이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들을 가리키는 일종의 ‘명예의 전당’이다. 2007년 12월 남 회장이 첫 번째 회원으로 가입한 이후 2010년대 들어 매년 2배씩 늘어나면서 회원 수가 839명(2015년 6월 현재)에 달하고 있다. 기업인이 427명으로 절반을 넘고 전문직 86명(10.3%), 자영업자 48명(5.7%)의 순이고 기업체 임원과 공무원, 스포츠인, 방송·연예인도 찾아볼 수 있다. 돈 많은 부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14년 11월 627번째 회원으로 가입한 김방락 선생(68)을 만나보자. 특전사 부사관을 거쳐 군무원으로 30년 넘게 근무하다가 은퇴한 후 10년 남짓 한 대학의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도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지만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면서 경비생활 10여 년 동안 번 돈을 모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공무원 연금(200만원)과 베트남 참전수당(22만원)으로 생활비를 하고 경비원 월급 120만원은 모두 기부하는 셈이다. 휴가라고는 군무원 때 30년 재직 기념으로 5일을 다녀온 게 전부란다. 제주도도 못 가봤고 외국은 베트남 파병 때 간 것밖에 없다.
외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부자로 죽지 않기 위해’라는 소신대로 은퇴 후 여생을 기부 등 사회헌신으로 살다가 미국 부자의 롤 모델이 되었다. 이 같은 전통을 이어받아 부자 서열 1, 2위를 다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기부금액에서도 수위를 다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가 수조원대의 기부를 하는 등 떠오르는 신흥부자들도 기부대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320억 달러(36조원)에 달하는 개인 재산 전부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 열심히 벌어서 사회에 기부하고 환원하는 것만이 최선이고 잘 하는 일일까?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과 철학이 다르다는 점에서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기부와 마찬가지로 상속 또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삶의 동기이자 보람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가운데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자손들에게 물려줌으로써 그들이 나와는 달리 좀 더 윤택하고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부모로서의 바람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다만 남과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자고 권할 수는 있을 것이다. 배고프고 아픈 사람들을 돌아보다 보면 더 많은 좋은 일들이 생겨날 것이고 거기서 남다른 보람과 성취감을 얻는 부자들이 많아질수록 따뜻하면서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따라서 기부 또는 봉사를 강권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득 및 재산수준이 높아질수록 고민에 빠지게 된다. 가진 돈, 늘어나는 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돈의 관리(how to manage)는 크게 3 How, 즉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how to portfolio), 어떻게 쓸 것인가(how to use),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how to pass down)’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강조하는 것은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할 경우 우리의 삶이 ‘유종의 미(有終之美)’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퇴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죽지 않는 사람도 없다.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의 저자 스테판 폴란이 주장한 바와 같이 영원히 살 것처럼 돈에 연연하지만 말고 나와 내 가족은 물론 한 걸음 더 나가 사회와 국가의 삶의 수준과 의미를 향상시키는 일에 돈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아닌 말로 일본사람들처럼 돈을 움켜쥐고만 있으면 나와 내 가족을 넘어 그 사회와 경제도 병들고 불행해질 뿐이다. 투자도 하고 그러면서 손해도 보고 이익도 보고 쓸 건 쓰고 물려줄 건 물려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돈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진정한 삶의 재미와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다시 한 번 ‘공자도 부러워할 5자’를 외치고 싶다. 5자가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니~. “놀자, 쓰자, 주자(베풀자), 웃자, 걷자.”
글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