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시원한 대나무 그늘이 생각난다. 대나무는 그 성질이 굳고 곧아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이 대나무를 가리켜 ‘차군(此君)’, 즉 ‘이 군자(君子)’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경우, 뒤에 대나무 숲이 있는 정자에 차군정(此君亭) 또는 차군헌(此君軒)등 당호(堂號)를 붙여놓고 있다.
그러면 ‘차군(此君)’이란 용어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중국 동진(東晉) 시대, 서성(書聖)으로 일컬어지는 왕희지(王羲之)란 인물이 등장한다. 왕희지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모두 5명으로, 현지(玄之) 응지(凝之) 휘지(徽之) 조지(操之) 헌지(獻之)가 그들인데 그중 5남인 왕휘지(王徽之)가 특히나 대나무를 좋아했다. 워낙 특이한 성격이었던 그와 대나무에 대한 일화가 ‘진서(晉書)’에 전해지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오(吳) 땅에 한 사대부가 좋은 대나무를 가꾼다는 말을 듣고, 휘지가 이를 보러 갔다. 도착해서 죽림 아래 가마에 앉아 감상을 하며 시를 읊조리고 있으니, 주인이 마당을 쓸다가 들어와 앉기를 권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주인이 나중에 출타함에 문을 걸어 잠그니, 비로소 탄식을 하고 자리를 떴다.’
그의 또 다른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 번은 남이 비워둔 집에 임시로 기거하고 있었는데, 집 주위에 대나무를 심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집도 아닌데 왜 심느냐 묻자 대답하길, “하루라도 이 군자[此君]를 보지 않고 어찌 견딘단 말인가!”[何可一日無此君邪] 하였다.)’
이 고사는 매우 유명해서, 훗날 대나무를 지칭하는 용어인 ‘차군’이란 단어가 여기서 탄생하였다. 마지막으로, ‘차군’이란 용어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소동파의 시 ‘어잠승녹균헌(於潛僧綠筠軒)’을 소개한다.
可使食無肉(가사식무육)
식사에 고기가 없을 수는 있어도
不可居無竹(불가거무죽)
사는 곳에 대나무는 없을 수 없네.
無肉令人瘦(무육영인수)
고기 없으면 사람을 야위게 하지만
無竹令人俗(무죽영인속)
대나무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오.
人瘦尙可肥(인수상가비)
사람이 야위면 살찌울 수 있으나
士俗不可醫(사속불가의)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는 법이라오.
傍人笑此言(방인소차언)
옆 사람 이 말을 듣고 비웃으면서
似高還似癡(사고환사치)
고상한 것 같으나 실은 어리석도다. (대나무도 앞에 두고 고기도 실컷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임)
若對此君仍大嚼(약대차군잉대작)
그러나 대나무 앞에 두고 고기 실컷 먹는다면
世間那有揚州鶴(세간나유양주학)
세상에 어찌 양주학(揚州鶴)이란 말 있었겠는가?
이 시를 해설하자면, 옛날에 손님들이 서로 노닐면서 각자 자신의 소원을 말했는데, 어떤 자는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기를 원하고, 어떤 자는 재물이 많기를 원하고, 또 어떤 자는 신선이 되어 학(鶴)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를 원하였다. 그러자 그중 어떤 자가 말하기를 “나는 허리에 십만 관(貫)의 돈을 차고, 학을 타고서, 양주의 하늘을 오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 ‘양주학’이란 말은, 양주자사라는 관직과 십만 관의 돈과, 학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신선이 되겠다는 욕망을 모두 가지려는 것으로, 실현 불가능한 욕심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