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말하다 관계를 잇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노원어르신휴센터'
고령 1인 가구의 증가는 지역 돌봄 공백을 키운다. 지자체 ‘1인 가구 지원센터’ 프로그램은 온라인에 공지하거나 연령 제한이 있는 경우가 있어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노원어르신휴센터’는 이웃을 연결하고 어르신들과 단단한 관계를 엮어간 사례다.
현장에서 본 ‘마을 돌봄’의 힘
노원구는 서울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세 번째로 많다. 특히 65세 이상 1인 가구는 2만 3808가구로 서울에서 가장 많은 지역구다. 이들 대부분은 아파트의 탄생과 함께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왔어도 이웃과 관계를 맺어본 경험은 흔치 않다. ‘노원어르신휴센터’는 이 견고한 단절의 장벽에 마음의 문을 열어가고 있다.

바람이 선선한 어느 아침, 상계9동의 아파트 놀이터에는 분홍 조끼(리더)와 노란 조끼(참여자)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와 가져온 간식을 나눈다.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안부를 묻는다”는 안민자 상계9동 노원어르신휴센터장의 설명처럼, 센터의 ‘바르게 걷기’ 프로그램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만남의 문을 여는 첫 단계다.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면 단지 내, 인근 마트, 시장에서도 인사가 오간다. 이런 연결을 더 촘촘히 하기 위해 소모임 ‘동그라미’를 운영한다. 성향과 연배가 비슷한 4~5명이 시장을 함께 보고 음식을 나누며 관계를 지속하도록 설계한 장치다. 운영자의 개입이 줄어도 ‘서로 돕기’가 가능하다.

노원어르신휴센터는 상계9동, 상계10동, 중계4동 세 곳에 거점을 두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우리 마을’이라는 슬로건과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어르신들의 관계 형성과 복지에 힘쓰고 있다. ‘스마트 기기 활용’ 프로그램은 걸음 수만큼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앱을 설치하거나 키오스크 주문을 실습해본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 지난해 돌발성 난청으로 심리적 위축과 고립의 위기를 겪었지만, 집으로 찾아와 안부와 음식을 건네는 다정한 이웃들에 힘입어 일상을 회복했다. 그는 “하나씩 알려주니까 어렵지 않다. 제일 재밌다”라며 엄지손가락을 높이 세웠다.

같은 시각 상계10동 센터에서는 ‘꽃할배 요리사’ 4명이 리더를 따라 오이참치김밥을 만든다. 올해 3년째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지원 예산이 줄어 중단 위기였지만, 어르신들이 “월 3만 원씩 재료비를 내겠다”며 스스로 지켜냈다.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교류할 여건이 마땅치 않았던 남성 어르신들을 요리라는 주제로 끌어냈다. 손주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줄 때 가장 기뻐하신다”라는 신지아 상계10동 센터장. 2년째 참여 중이라는 어르신은 “벌써 100가지 메뉴는 익혔을 것”이라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중계4동으로 자리를 옮기자, 맛있는 냄새와 밝은 웃음소리가 멀리서도 이정표가 되어준다. 20~30명의 어르신에게 단돈 5000원에 건강한 보양식을 내어주는 ‘한 끼 밥상’이 차려졌기 때문이다. 좁은 부엌에서 6명 내외의 리더들이 채소비빔밥과 국, 전에 과일까지 담아낸다. 1935년생 어르신의 “메뉴 몰라도 믿고 오는 맛집”이라는 칭찬에, 또 다른 이웃은 “사랑이 가득 담겨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제도와 주민이 만든 모델
2019년 서울시의 로컬랩 동네발전소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2022년 노원구 ‘서로돌봄 활성화 지원 조례’가 제정되면서 2023년부터 위탁운영 사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타 지자체와 연구자들의 벤치마킹 문의도 잇따른다.
공간은 단지 내 아파트를 임차해 활용한다. 임차 공백이 생겼을 때는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자기 집을 내어줘 모임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웃의 집이 곧 ‘마을 사랑방’이 된 셈이다.
프로그램 리더는 지역의 중장년층이 맡는다. 사회서비스형 어르신 일자리로 소정의 급여를 받으며, 프로그램 특성에 맞춰 교육을 받는다. 보드게임 활동할 때 한 리더는 게임 진행을, 또 다른 리더는 참여자의 마음을 살핀다. 경쟁이 서운함으로 번지지 않도록 감정선까지 보살피는 방식이다. 리더들은 노원어르신휴센터의 모체인 ‘함께걸음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많다.
핵심은 소통과 관계다. 현장에서 강조하는 ‘만날 때마다 자신을 소개하고, 가까이에서 정면으로 보고 천천히 짧게 말하기’ 같은 원칙은 리더들이 반드시 익혀야 할 기본이다. 칭찬과 격려는 참여자의 자존감을 지켜주며 지속적인 참여를 이끈다. 이는 관계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핵심 장치다. 또 센터는 프로그램이 아닌 관계를 설계하며 마을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센터를 직접 이용하지 않는 이웃들도 고향에서 온 농산물을 나누며 “꼭 우리 부모님 같아서”라고 마음을 전한다. 노원어르신휴센터는 문만 닫고 들어가면 고립되기 쉬운 도시와 아파트 환경에서도 마음을 열면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안전망이 되어주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