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혼자서 해결하지 마세요"
9월 21일 치매극복의 날을 맞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12월까지 치매 관련 기사를 연재합니다.

치매 진단은 환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삶의 질과 일상을 송두리째 흔드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제도는 많지만 정작 가족에게 와닿는 건 많지 않다. ‘치매는 처음이지?’의 저자이자 10년 넘게 치매안심센터에서 일해온 사회복지사 홍종석 작가는 “결국 치매 돌봄 가족이 가장 원하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하고 매니지먼트해줄 전문가”라고 강조했다.
우리 나라는 2024년 말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치매 환자는 약 97만 명으로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꼴이다. 치매 환자의 80% 이상이 가정에서 가족 돌봄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배우자나 자녀 등 보호자는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소진을 겪는다. 정부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장기요양 가족휴가제, 중증치매 산정특례, 치매정책사업(치매 치료관리비 지원, 조호물품 제공, 치매 가족 및 보호자 지원사업, 실종 예방 지원사업 등), 성년후견제도, 치매가족 연말정산 인적공제, 치매상담콜센터 등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막상 어떤 제도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는 것이 현실이다. 제도에 대한 접근성과 안내 체계의 발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치매 진단 직후, 당황과 막막함의 연속
부모나 배우자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은 가족에게 충격 그 자체다. 명절을 보내고 나서 치매안심센터를 찾는 가족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평소엔 잘 몰랐던 부모의 변화가 눈에 띄게 드러나고, 가족들은 갑작스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에 빠진다.
홍종석 작가는 “치매 진단을 받으면 많은 가족과 환자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 부담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중앙치매센터에서 발표한 ‘2023년 치매 역학조사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 보호자의 45.8%가 돌봄 부담을 느끼고, 우울감이나 삶의 질 저하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2024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4년 치매정책 사업안내 실태조사’에서는 치매 가족의 48%가 “제도가 있다는 건 알지만 신청 방법을 몰라 활용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결국 정보 부족과 제도 분절성이 가족의 부담감을 키우는 셈이다.
제도는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현재 정부는 다양한 치매 지원책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러 지원 제도 중 가족들이 가장 먼저 묻는 건 ‘치매 검사와 진단받은 후 지원 및 관련 내용’이다.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 조기 검진을 받고 상담 후 등록 관리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가족에게는 큰 위안”이라고 홍 작가는 말했다.
특히 센터에서는 진단 이후 상담과 함께 등록 관리하며 가족·보호자의 심리상담, 자조모임 참여, 맞춤형 돌봄 기관 연계, 장기 돌봄 가족의 휴식권과 긴급 돌봄 지원, 조호물품(기저귀, 요실금 팬티 등), 인식표 발급, 배회감지기(GPS) 지원, 지문 등록 등 실질적인 장기요양제도 활용 방법도 안내한다.
이렇게 진단-등록-지원이 한곳에서 빠르게 이루어진다. 복잡하게 여러 기관을 오가야 했던 과거와 달리, 정부 치매 지원책은 가족의 정보 부족과 제도 분절에서 오는 막막함을 크게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제도의 사각지대
현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도의 사각지대다. 최근 늘고 있는 ‘치매 환자가 치매 환자를 돌보는’ 상황은 노노케어(老老 Care)를 넘어선 새로운 현실이다. 배우자 역시 치매 진단을 받아 사실상 서로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홍 작가는 “부부 모두 인지기능이 떨어지면 가족이나 제3자 없이돌봄이 불가능하다”며 “관찰하고 중재하는 사람이 없으면 방치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도 경증 환자에게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경증 치매 환자인 경우 인지지원등급으로 주야간보호센터 이용이나 일부 복지용구 대여는 가능하지만, 신체적으로 건강한 환자는 ‘아직 멀쩡한데 왜 저런 시설을 이용해야 하냐’며 거부감을 갖고 제도를 회피한다. 방문요양서비스도 하루 3시간 남짓에 불과해, 24시간 돌봄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 결국 가족은 한 달 300만~400만 원 드는 입주 간병인을 고용하거나 ‘사회적 입원’을 택할 수밖에 없다.
현행 지원책은 중증 환자의 안정적 장기 돌봄엔 필수적이나, 경증 환자나 복잡가족(부부 동반 치매 등), 지원망 없는 경우에는 사각지대가 넓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혼자가 아닌 돌봄, 함께하는 케어 매니저
홍종석 작가는 “치매 당사자와 가족이 치매로 인해 불편하더라도 불행하지는 않도록 돌봄 계획을 세우고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은 한 명의 케어 매니저가 30~40명의 환자를 관리하며 상황에 맞게 병원, 주야간보호센터, 후견 서비스와 연계한다. 반면 한국은 검진은 치매안심센터, 돌봄은 장기요양보험, 법적 지원은 성년후견제도로 각각 흩어져 있어 가족이 ‘매니저’ 역할을 떠안아야 하는 실정이다.
치매 가족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끝까지 함께 가는 동행자’다. 진단에서 돌봄, 시설 입소, 법적 지원까지 여정을 가족이 홀로 짊어지지 않도록 케어 매니저형 전문가가 제도를 유기적으로 엮어주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제 치매안심센터, 장기요양보험, 성년후견제도를 잇는 통합 관리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움말 홍종석 작가2010년부터 치매안심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 국가치매교육자문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서울가정법원 심층후견감독위원, 한국후견사회복지사회 이사, 사람중심케어 실천네트워크 이사, 치매케어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치매는 처음이지?’라는 책을 집필하며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