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살아내는 전환의 기술–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 개최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가 주최하고, 트루에이징이 주관한 ‘100년을 살아내는 전환의 기술–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가 9월 17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 시작점 B1 브릭스홀에서 열렸다. ‘시대공명: 길어지는 삶, 달라진 질문들’을 표제로 내세운 이번 행사는 기대수명 연장에 따른 생애 설계, 교육·일·돌봄 시스템의 전환을 모색하는 자리로, 성동구 문화창조산업 축제 ‘크리에이티브×성수’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는 환영사에서 “초고령화·저출생을 경제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개인의 삶과 라이프스타일의 관점에서 어떻게 인생을 채울지 논의해야 한다”며, “장수명 시대에 대한 이번 대화가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여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축사에서 “평생학습을 어떻게 체계화할지, 건강하지 못한 시기를 집에서 돌볼 수 있는 지역 의료·돌봄 서비스로 어떻게 뒷받침할지, 직업을 바꿀 때마다 안정적으로 재교육을 받게 할 방안을 행정이 고민하고 있다”고 밝히고, “직업 전환이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배움·일·쉼의 설계가 전환의 기술
김희경 작가(전 여성가족부 차관)는 기조강연에서 “나이 듦은 질문이다”라며 장수 시대가 기존 생애주기와 삶의 이정표 전반에 “거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엔 예외였던 100년 삶이 이제는 예사이자 때로는 두려움이 됐다”고 운을 뗐다.
김 작가는 인생을 집에 빗대 “전체 면적의 30%를 차지하는 ‘아트리움(Atrium)’이 새로 생긴 셈이며 이를 제2의 성년기라 부른다”고 정의하면서 “이 구간이 삶의 모든 방(단계)에 영향을 미치고, 전환과 재출발이 일어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전통적 ‘교육–일–은퇴’ 3단계 대신 다단계·순환형 생애모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 체계의 전환도 제안했다. 김 작가는 “교육은 제도 안에서 20대 초반에 끝나지만 학습은 평생”이라며 “갭이어·갭학기 같은 실험, 중년의 재입학과 업스킬링을 제도화하고, 학령인구 감소 시대 대학은 중년층에 문호를 연 ‘열린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김 작가는 장수 시대의 생애 설계에서 관건은 과도기를 건너는 힘이라고 짚었다. 그는 “상승과 하강, 멈춤과 재진입이 반복되고 단계 사이 ‘과도기’가 길어진다”며 “이 구간을 건너는 역량의 격차가 곧 장수의 격차가 된다”고 했다. 이에 필요한 무형자산으로 “생산 자산(기술·지식), 활력 자산(건강·우정·사랑), 그리고 핵심인 변형 자산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하며 “가능한 자아를 설계하는 상상력, 자기인식,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 네트워크 참여 역량이 변형 자산이며, 이것이 빈약하면 장수 사회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공공의 역할에 대해서는 “중년의 재교육·재진입을 돕는 자원을 사회가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과도기를 스스로 만들고 건너갈 역량이 부족한 이들도 장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끝으로 변화에 대한 관점 전환을 당부했다. 그는 “변화는 내적 항상성을 흐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도구”라며 “외줄타기에서 막대를 유연하게 움직여 균형을 잡듯, 정답을 고집하기보다 질문을 바꾸자. ‘언제 은퇴할까’가 아니라 ‘배움·일·쉼의 리듬을 어떻게 설계할까’, ‘나와 타인의 시간을 어떻게 존중할까’를 묻는 것이 전환의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경력과 직장에 갇히지 말아야
두 번째 기조강연에서 권민 엔텔러키 브랜드 편집장은 “ ‘100년을 살아낸다’는 말이 생명 연명처럼 들릴 수 있다”며 “그래서 더더욱 하루를 인생처럼 사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85세의 내가 지금을 산다면 무엇을 할까를 묻는 ‘시간 여행자’ 관점이 유효하다. ‘어떤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오늘의 선택을 놀랄 만큼 단순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는 전통적인 선형적 삶의 모델(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직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이 50대 이후 직장을 잃으며 '유령 사지(Phantom Limb)'처럼 과거의 학력, 경력, 직장에 갇혀 지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과거의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내가 누군지, 어떻게 죽고 싶은지"를 알아야만 비로소 자신의 길을 그릴 수 있다고 역설했다. 권 편집장은 “AI를 최고의 협력자, 친구로 활용하여 이러한 '유령 사지'를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중장년층에게는 '1인 기업'을 통해 "내가 어떤 것이 부족하고, 어떤 사람이 필요하며, 어떤 커뮤니티가 있는지"를 스스로 발견하는 경험이 중요하며, 개인의 가치와 철학을 담아 브랜드처럼 살아가는 '휴먼 브랜드' 개념을 제안했다.

자기 돌봄의 계기 필요
패널 세션 ‘교육과 관계의 재구성’에서는 개발자·컨설턴트 고승원 대표와 김범준 변화성장 연구소장이 현실적인 전환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학교가 아니라 아이와 가정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한글을 늦게 읽어도 수영을 잘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스스로 일어나는 힘이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 다양성을 ‘학업 부족’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범준 소장은 학교 교과목에 국어, 수학, 영어뿐 아니라 건강, 마음 건강, 자기 돌봄과 같은 자기 돌봄 교육이 필요하다고 상상하며, 부산의 임산부 전용 칸처럼 ‘자기 돌봄 칸’을 지하철에 만들어 일상 속에서 자기 돌봄을 실천할 계기를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혜영 트루에이징 대표는 “늘어난 수명 30년을 노년기에만 덧붙일 게 아니라 생애 전반에 유연하게 배치해야 한다”며 “교육–일–은퇴의 3단계 모델을 넘어 배움·일·건강·관계·기여가 순환하는 다단계 생애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인생을 교육만 직선으로 달리게 할 수는 없다”며 “길어진 삶에 맞춘 교육·관계의 설계가 시민 각자의 실험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