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남길 것인가’

100년을 사는 인간이 1000년을 내다보고 경영할 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태산 같은 부와 드높은 이름이 모두 사라진 어느 날에라도 뿌리 깊은 나무와 바위, 이들을 심고 세운 뜻만은 고고하게 남아 있지 않을까. 이에 착안한 메덩골정원이 지난 9월 베일을 벗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K-정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정원 조성’이라는 한 자산가의 꿈이 6만 평(약 19만 8347㎡)의 대지에서 자라고 있다. 그 현장은 강원도 횡성군과 원주시와 닿아 있는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금왕리. 북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더렁산·비룡산·매봉산·구락산·삼각산·금왕산이 원을 그리며 감싼 자리에 메덩골정원이 들어섰다. 메덩골정원은 지난 8월 7000평(약 2만 3140㎡)의 한국 정원 개장을 시작으로, 2026년 그랜드 오픈을 예정하고 있다. 이후 숲으로 들어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는 산책로도 조성할 계획이다.
제 색을 은은하게 드러낸 연분홍 메꽃 덩굴이 만발하던 골짜기라 ‘메덩골’이라 불렸던 이곳. 어느 환경에서나 잘 자라는 메꽃은 우리 민초의 삶을 은유하는 듯하다. 한국 정원 도입부는 ‘고향의 봄’, ‘서낭당 나무’, ‘빨래터’, ‘남도돌담길’, ‘메덩내’로 이어지며 우리네 유년기의 한 자락, 영화사의 한 장면에서 보았을 법한 풍광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구간의 이름 또한 ‘민초의 삶’이다. 빨래터와 돌담길에서 두런대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친숙할 정도로 눈에 익은 이 자연은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까지 철저한 계산과 설계와 인간의 손길로 구현한 ‘정원’이다.
자연주의 정원은 화려한 볼거리보다 지속 가능한 환경과 생태계를 중시하며, 지역 토착 식물과 계절별 변화를 반영해 자연스럽지만 질서 정연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를 통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자연주의 정원이 조경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비슷한 식물과 식재가 눈에 띄는 경우가 많은데, 메덩골정원은 자연주의의 ‘자연’을 한국 전통에서 찾으며 결이 다른 K-정원을 조성했다. 산업화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맥이 끊겼던 한국 정원 문화의 자존심을 되찾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정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한국인의 정신 담은 건축
남도 돌담길을 지나면 선비들의 풍류가 느껴지는 건축물을 만난다. 수준 높은 전통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이자, 바람을 느끼며 경치를 감상하는 ‘재예당’과 달빛을 즐기는 ‘섬휘루’ 등은 그야말로 ‘풍류’의 공간이다. 이곳을 지나면 경주 최씨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리는 경주솔밭과 문파샘길이 자리한다.

그렇다고 전통을 그대로 옮겨온 것만은 아니다. 프랑스 조경가와 협업한 초현실적인 ‘무영원’은 전통에 기반한 상상력과 서사가 빚어낸 독창적인 풍경이다.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이 병산서원을 재해석한 ‘선곡서원’은 유생을 상징하는 ‘유생 돌정원’, 기하학적인 ‘독락의 탑’과 함께해 오늘날 선비 정신을 이어간다는 건 어떤 모습인지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이곳에는 갤러리와 카페가 있으며 굿즈를 판매하니 쉬어가도 좋겠다.
정원 설립자는 삶을 반추하는 시기에 철학을 만났다. 이른 은퇴 후 인문학 공부에 매진하다 독일 철학자 니체에게서 영감을 받은 그는, 삶이 다한 후 자신의 이름이며 자산과 관계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13년간의 치열한 기획과 장인의 손길로 메덩골정원 조성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공개한 한국 정원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은 내년 그랜드오픈을 통해 선보일 ‘현대 정원’의 영역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와 조경가들을 초청한 이 영역에는 500평(약 1652㎡) 넘는 공간에 단 하나의 기둥도 찾아볼 수 없는 비지터센터 ‘디오니소스’, 니체 철학의 핵심인 초인을 형상화한 ‘위버하우스’ 등 혁신적인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우리 역사의 주요 장면과 세계 고전의 주요 키워드, 종교철학의 개념을 건축적 언어로 풀어내면 어떤 형상이 될지 기대를 자아낸다.

메덩골정원 찾아가기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메덩골길 1
시간: 10: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요금: 성인 5만 원, 65세 이상 4만 원,
미취학/초등학생은 부모 또는 조부모 동반 시 무료
예약: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사전 예약제
홈페이지: medongaule.com
문의: 070-4286-3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