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찾는 내 삶 가치 캠페인] 가치동행일자리 사업으로 복지 사각지대 채워
30년을 광역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다. 회사를 나와 내 차를 끌어야 돈을 번다는 말을 믿고 움직였건만, 겪은 바 없던 코로나19 사태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주원 시민은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인정받아 3년 전 영구임대주택인 중계주공9단지에 홀로 입주했다. 최근 관리비 연체로 이 집마저 잃을 뻔했으나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9단지 거주민의 ‘친절한 이웃’, 주거복지사 덕분이다.
이주원 시민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노원구 중계주공9단지. 그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좁은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활짝 열린 현관문이 보였다.
“손님 오신다고 준비해두셨네. 어르신, 안에 계세요?” 열린 현관문에 노크한 뒤 들어서는 박춘서 주거복지사의 뒤를 따랐다. 이미 안면을 튼 주거복지사의 안부 인사 덕분인지 이주원 시민이 밝은 미소와 함께 맞아주었다.
“그래도 사람들 대화하는 데엔 커피가 있어야지.” 물을 끓이러 주방으로 향하는 그의 뒤를 주거복지사가 바로 뒤따른다. 방문한 김에 가스 밸브나 가스레인지가 문제없이 작동하는지 점검하는 것.
이주원 시민이 커피를 내올 때까지 박춘서 주거복지사가 옆에 붙어서 부엌 사용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가스타이머 설치가 필요한지 계속해서 묻는다. 도시가스 사용이 늘어나는 겨울철이 다가오기 전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영구임대주택 주거복지사 배치사업은 주거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입주민 주거권을 보장하고자 도입됐다. 주거복지사는 고령자, 수급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밀집해 있는 영구임대주택에 배치되어 일한다. 주거 문제를 겪고 있다면 입주민 누구나 주거복지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2022년 15곳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 말 500가구 이상 전국 영구임대주택 111곳에 주거복지사가 배치된 상태다. 이곳 중계주공9단지에서는 지난해부터 박춘서 주거복지사가 근무 중이다.
주거복지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저소득 고령자·장애인 가구 등 취약계층의 안정적 주거 환경을 보장하는 촘촘하고 든든한 주거복지 지원이 특징이다. 거동 불편, 저장 강박, 정신건강 위기 가구를 찾아내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연계하는 식이다. 혹은 입주민 자활, 주거 환경 개선 지원, 커뮤니티 활성화 등 단지별 특화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상주하는 거주민 맞춤형 복지 전문가인 셈이다.
이주원 시민 역시 주거복지사의 덕을 톡톡히 봤다. 최근 서울형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통해 주거비를 지원받아 밀린 임대료를 해결한 것. 그가 처한 문제를 파악한 주거복지사가 주민센터에 연계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도왔다. 영구임대주택은 석 달치 임대료를 체납하면 원칙상 퇴거 조치된다. 중계주공9단지 내 취약계층 가구를 면밀히 살핀 주거복지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가 사회의 더 외진 곳으로 내몰렸을지도 모를 터.
“덕분에 고마운 일이 많아요. 일주일에 두 번 반찬 지원해주는 것도 정말 고맙지. 혼자 사는 데다 요리는 아예 할 줄 모르니 김치나 꺼내 먹고 말았는데, 한 끼 식사라도 여러 반찬 놓고서 먹을 수 있으니까. 또 지난번에 같이 모여서 만든 비누는 거품이 얼마나 잘 나는지 몰라. 개운하게 잘 닦여서 씻을 때마다 아주 좋아.”
셋 이상의 든든한 가치
중계주공9단지는 총 2694세대 중 1300세대 이상이 이주원 시민과 같은 65세 이상 1인 가구에 해당한다. 주거복지사의 상담 대상자가 단지 전체 주민의 약 54%에 달하는 수준이다. 9단지의 경우만 보더라도 한 명의 주거복지사가 온전히 챙기기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가치동행일자리 참여자의 활동이 주거복지사와 거주민 모두에게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박춘서 주거복지사는 현재 세 명의 가치동행일자리 참여자와 함께 일한다. 이들은 할당받은 만 65세 이상 수급자 1인 가구 목록을 들고 해당 세대의 문을 두드린다. 어르신과 대화하며 주거 실태를 파악하고, 취합한 정보를 박춘서 주거복지사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간혹 방문을 거부하는 가구도 있고,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하루에 방문해야 할 세대 수를 다 못 채우는 날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를 힘들어하는 참여자는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오히려 입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운영하고, 단지 내 행사를 진행할 때도 발 벗고 나서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가치동행일자리 참여자들이 실제로 담당하는 일은 주거복지사 업무 보조 외에도 많습니다. 우선 단지 내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행사나 프로그램 진행을 도와주시죠.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는 분도 계세요. 7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어르신 건강체조 및 인지 강화 프로그램도 참여자분이 직접 운영하는 활동이고요. 참여자 중에는 사회복지 분야에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활동해오던 분들도 계세요. 덕분에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의 활동 기간이 끝난 뒤가 걱정이라며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는 박춘서 주거복지사. 그는 앞으로도 가치동행일자리와 주거복지사 배치 사업이 계속 동행하며 보다 큰 가치를 일궈내기를 꿈꾼다. “덕분에 산다”고 말하는 이주원 시민의 환한 웃음이 널리 퍼지길 바라는 소박한 희망을 위해.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가치동행일자리를 통해 ‘일로 찾는 내 삶 가치’ 캠페인을 펼칩니다. ‘2024 가치동행일자리’ 우수사례를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