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형부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요.’ 인터넷에 떠 있는 어느 열여덟 살 여고생의 글 제목이다. ‘처제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요’만큼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에게(사실은 남자들에게) 묘한 연상을 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나는 당연히 형부가 없고 처제도 없지만(ㅠㅠ), 왜 형부-처제 이야기만 나오면 얄궂고 야릇해지는지 잘 모르겠다. 그 글이 인기인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여고생은 재작년에 한가족이 된 형부 땜에 미칠 지경이라고 한다. 잘생긴 데다 엄마 몰래 용돈을 잘 주어 처음엔 형부를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든 입으로 소리를 내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소파에 앉으라고 하면 “포잉~” 하고 앉는다. 장모가 부르면 왜 이제 부르냐는 듯 “띠용” 하고 달려간다. 차에서 내릴 때는 “호잇, 히얏!” 하는 소리를 낸다.
밥 먹을 때 “푸욱” 하고 밥을 푸고, 무거운 거라도 드는 것처럼 깻잎을 “잇차 잇차” 하고 떼어 먹는다. 설거지할 때는 “달그락달그락”, 물을 따르면서 “쪼로록”, 냉장고 문 열 때 “추왕!”, 옷 벗을 때 “휘리릭”, 종이에 글씨를 쓰면서 “슥슥”….
의성어 의태어를 총동원해서 자기 행동을 일일이 예고하고 중계 방송해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만화를 너무 봤는지, 아니 지금도 만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래서 이 이상한 형부 때문에 학을 뗀 처제나 장모는 그가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는데, 정작 마누라는 귀여워 죽는다고 한다. 아마 연하의 남자 아닌가 싶다.
이상한 사람은 또 있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좌변기에서 응아 소리를 안 하면 일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집에서든 공중화장실에서든 “응아, 응아!” 하고 자기를 응원해야 응가가 나온다. 습관이라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설사를 할 때는 더하다(이건 잘 이해가 안 됨), 그는 SNS에 “내가 소리를 낼 때마다 자꾸 뭐 하는지 관심을 가지는데 옆 칸에서 제발 관심 끊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사람은 저마다 소리를 낸다.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하는 소리나 기색을 인기척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내는 소리가 아니라도 사람은 무슨 소리든 내기 마련이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지 아니면 습관인지 하루 종일 큼큼거리는 사람을 봤다. 어떤 여성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재채기를 크게 해 주위를 놀라게 한다. 어떤 남자는 웃음소리가 하도 커서 눈총을 받곤 한다.
이런 말을 하다 보니 나는 무슨 소리를 내고 있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남들이 기억하고 인식하는 나만의 소리가 있을 텐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녹음된 내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담배를 한창 피울 때는 아침에 일어나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는 게 첫 일과였지만, 지금 그런 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남들이 콕 집어 알려줄 때까지 내가 내는 소리는 접어두고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를 이야기해보자. 지금은 음력 10월, 이른바 소춘(小春)의 초입이다. 초동(初冬) 또는 맹동(孟冬)이라고 하는 음력 10월은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해 ‘작은 봄’이라고 부른다. 그렇긴 해도 밤낮으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좀 늦었지만 가을엔 구양수(歐陽修, 1007~1072)의 ‘추성부’(秋聲賦)를 음미해야 한다. 밤중에 책을 읽고 있는데 서남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오싹해져서 동자에게 알아보라 하니 동자가 대답하기를, “별과 달은 밝고 깨끗하며 밝은 은하수가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라고 했다지? ‘추성부’는 이 나무 사이에서 나는 소리로부터 천지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일로 생각이 번져 스스로 탄식하는 고금의 명문이다.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독일 작가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 1892~1973)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명문이 있다. 그가 쓴 비슷한 글 ‘내가 사랑하는 소음, 음향, 음성들’은 세상과 사람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아, 한 잎 가랑잎이 살그머니 떨어질 때, 가슴 아프도록 지친 소리. 아직도 나무에는 여름이 달려 있는데 어느덧 한 잎이 떨어지고 있다. (중략) 정적의 소리야말로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무위(無爲)로부터, 근원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심연의 흐름ㅡ바로 오르간의 음악 소리요, 조개껍데기의 소리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 속을 흐르는 피의 음악이다.”
세상의 온갖 소리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과,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가령 피천득의 명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읽으면 “다른 사람 없는 방 안에서 내 귀에다 귓속말을 하는 서영이의 말소리” 등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소리가 많이 나온다. “봄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갈대에 부는 바람 소리, 바다의 파도 소리, 골목을 지나갈 때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서 있게 하는 피아노 소리, 젊은 웃음소리….”
한유(韓愈, 768~824)의 글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의하면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내게 된다. 초목에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어 소리를 내게 되며, 물은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움직여 소리를 내게 된다. 사람이 말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부득이한 일이 있은 뒤에야 말을 하게 된다. 노래를 하는 것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며 우는 것은 회포가 있기 때문이다. 무릇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불편한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우리가 자연의 소리보다 더 자주 듣는 것은 인간의 소리이며 생활의 소리지만 들어서 좋기보다는 귀 막고 싶은 소음이 더 많다. 군소리, 헛소리, 흰소리, 허튼소리, 허드렛소리, 오만소리, 볼멘소리, 갖은소리, 왼소리, 입에 발린 소리, 그리고 개소리! 이 중 왼소리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 험하거나 궂은소리이며 갖은소리는 쓸데없는 여러 소리,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걸 다 갖춘 듯 뻐기며 하는 말을 뜻한다.
소리가 참 많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고, 내 소리는 되도록 내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은 입동(11월 7일)을 지나 소설(11.22) 대설(12.7)로 치닫고 있다. 한유의 말대로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회든 되도록 평정을 얻어서 귀가 괴로운 소리가 적은 겨울을 맞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