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분노’ 꾹 참지도 말고, 욱 내뱉지도 말고

기사입력 2020-11-11 09:14

[중년의 마음휴게소] 분노증후군과 분노조절장애

분노사회’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세상이다. 특히 한국 중장년의 경우 ‘한이 많은 세대’라 불릴 만큼, 노여움과 울분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이가 대다수다. 누군가는 화를 참지 못해, 또 누군가는 화를 내뱉지 못해 마음의 병을 앓는 것이다. 이러한 화가 자칫 ‘분노증후군’이나 ‘분노조절장애’로 이어진다면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 분노도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말 김동철 심리학 박사(김동철심리케어 원장)



흔히 ‘화병’(火病) 또는 ‘울화병’(鬱火病)으로 잘 알려진 ‘분노증후군’은 오랜 시간 축적된 화를 표출하지 못해 생기는 증상이다. 이와 반대로 ‘분노조절장애’는 느닷없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하는 등 화를 분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분노조절장애의 경우 지하철에서 학생에게 시비를 거는 노인이나 묻지마폭행을 가하는 중년남성 등이 표면적 이슈가 되어 이러한 증상을 가진 시니어가 많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억압받으며 생계와 가정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살아온 한국 중장년의 특성상 분노증후군을 겪는 이가 훨씬 많다(분노조절장애는 해외에서, 또 청소년이나 청년 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나타남). 다만, 가족도 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드러나는 증상이 거의 없어 그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조증상이 덜한 암일수록 늦게 발견돼 치료가 어렵고 위험하듯, 분노증후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나도 꿈이 있었는데… 엄마의 울화

# 70대 여성 A 씨는 젊은 시절의 사회 분위기와 가정 사정 등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한을 자녀 교육을 통해 풀고자 했고, 온갖 정성으로 아이들은 고학력에 좋은 직장까지 얻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자녀들은 번번이 어머니의 무지(無知)함을 들먹이며 무시를 일삼았다. 이에 A 씨는 소외감과 우울함으로 지난 세월을 한탄했고, 급기야 극단적 시도까지 생각하게 됐다.

한국의 중장년 여성들은 자기 뜻과 다르게 학력 단절을 겪거나 사회 참여 기회를 박탈당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전업주부로서 소임을 다했고, 못다 이룬 꿈을 대신 펼쳐줄 자녀들에게 헌신하며 살았다. 그러나 장성한 자녀들은 그런 어머니의 공(功)을 인정하기는커녕 자신의 지식수준과 비교하면서 종종 무시하거나 소외시킨다. 물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본의 아니게 내뱉은 말 등으로도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중장년이 박탈감을 갖게 되고 비참한 심정이 되어 분노하게 된다고 한다(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다). 여기에 배우자와의 사별이나 번아웃증후군(소진증후군)까지 겹치면 심한 우울 증세가 나타나고, 상태가 악화하면 극단적인 시도까지 감행한다.

이렇듯 위험한 병이지만, 안타깝게도 자가 확인이 쉽지 않아 예방이 어렵다. 몇 가지의 체크리스트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단순한 심리·정신질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와 같은 상황에서 최선의 예방책은 자녀들 손에 달렸다. 보통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과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고 불편해한다. 그러나 이럴 때 자녀가 따뜻하게 공감해주고 인정하고 칭찬해주면 부모의 울화는 조금씩 누그러진다. 시니어 입장에서는 자녀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묻어둔 고충을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게 좋다.



내가 왜 화를 냈지? 분노 컨트롤이 어려워

#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60대 남성 B 씨는 최근 들어 자괴감이 많이 든다. 자신도 모르게 욱하는 심정이 들어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자주 역정을 내곤 한다. 심할 땐 욕설에 소리까지 지르면서 폭력적으로 변한다. 그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희한할 만큼 기분이 가라앉는데, B 씨는 분노조절이 안 될 때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가 몰려와 괴롭기만 하다.

분노조절장애는 뇌신경이나 호르몬 등의 문제로 스스로 감정 조절이 어려워 뜻하지 않게 폭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마치 조울증처럼, 심하게 화를 냈다가 이내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곤 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자주 반복되면 본인은 물론 주변인까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 마음을 다스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므로 증상이 의심되면 반드시 정신과 진료와 약물치료 등을 받아야 한다.

특히 과거에 조현병, 우울증, 공황장애를 앓았거나 파킨슨, 치매 등 뇌 질환 환자인 경우는 분노조절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 또,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뇌수술 후유증으로,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망가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때때로 분노조절장애가 지속되다가 우울증이 오거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한 주변과의 소통 단절을 겪어 분노증후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중장년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에 증상이 더 심해지므로 환절기나 추운 계절엔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화를 낸다면(주변에서 점검해주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분노조절장애를 의심해보고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길 권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기사

이어지는 기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기사

  • 대한민국은 세계인의 초고령화 실험실, “노인 혐오 경계해야”
  • 2025년 초고령사회, 新노년층 등장… “73세까지 근로 원해”
  • “돌봄 골든타임 앞으로 5년” 천만 노인, 어떻게 감당할까?
  • [2025 노후 트렌드⑤] 노후 소득이 달렸다, ‘연금빌리티’

브라보 추천기사

브라보 테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