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명작 톺아보기]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수전 손택
시대를 앞서간 명사들의 삶과 명작 속에는 주저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던 사유와 실천이 있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서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이번 호에는 ‘타인의 고통’의 작가 수전 손택을 소개한다.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하다.”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버린다.”
이미지 과잉 시대의 뒷모습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낸 표현이 또 있을까. ‘타인의 고통’의 작가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은 이미지가 대량으로 살포되는 사회가 누군가의 고통을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로 만들어버리고, 그 참상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한다고 비판했다.
초창기 전쟁 사진들 중 걸작으로 칭송받은 것들은 대부분 연출되거나 피사체에 손을 댄 흔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대중을 속이는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에 대해서도 폭로하자 미국 사회는 한동안 논쟁으로 들끓었다.
‘타인의 고통’은 사진을 통해 전해지는 전쟁의 잔혹함이 인간을 얼마나 무감각하게 만드는지를 탐색한다.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인간을 쏘는 총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촘촘한 논거에 권력자들은 움찔했다.
로베르 두아노가 1950년에 찍었다는 ‘시청 앞에서의 입맞춤’이 순간 포착한 사진이 아니라 연출된 것임이 밝혀졌을 때 분통을 터뜨렸던 사람들에게도 쓴소리를 날렸다. 어디에서든 카메라를 들이대고 재빨리 포착해주기를 바라는, 관음증 같은 사람들의 욕구가 당연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위정자들의 ‘훌륭한(?) 감식력’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폭파됐을 때 끔찍한 주검 사진들이 공개되지 않은 이유는 대중들이 알아야 할 범위를 놓고 의견 일치를 강요한 특정 기관 때문이었다고 그녀는 폭로한다. 아울러 “대중에게 공개되는 사진들 중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것들은 주로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라며 이는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00여 년 전의 관행이 그대로 이어진 행태라고 비판했다.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타인의 고통’은 수전 손택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2003년에 발간됐다. 손택은 먼저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담보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라고 요구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어쩌면 뻔뻔하거나, 부적절한 반응이거나,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며 이제 “타인의 고통은 연민이 아니라 연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문화비평가, 극작가, 인권활동가로도 활동한 수전 손택은 193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명문대인 버클리대학에 입학할 만큼 총명했다. 25세에는 하버드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후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각종 신문과 잡지에 활발하게 글을 발표한다. 전쟁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등을 거침없는 언어로 비판해 ‘미국 문단의 악녀’,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등 숱한 별명을 얻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에둘러 말하는 법 없는 그녀의 직설 화법에 종종 얼굴을 찌푸리며 ‘문화계의 뚜쟁이’, ‘캐비어 좌파’라고 낮잡아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이 모든 별칭들은 수전 손택이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슬퍼하되, 바보가 되지는 말자”
31세에 발표한 글 ‘해석에 반대한다’와 ‘캠프에 관한 단상’은 그녀를 하루아침에 유명인사로 만들어줬다.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손택은 “전통과 도덕을 위한 해석은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며 인습에 도전하는 예술작품을 이러한 의도로 해석하는 비평가들은 작가들을 길들이려는 것이라며 비난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캠프에 관한 단상’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녀는 소위 조잡하고 싸구려 같은 것들에 열광하는 문화를 지칭했던 은어 ‘캠프’를 새로운 감수성으로 분석하며 고급문화와 하위문화의 충돌을 변화와 융합의 관점으로 들여다봤다. 이 책은 1960년대 청년문화운동의 격렬했던 감성을 대변해줬다.
수전 손택은 스스로를 ‘미련한 탐미주의자’, ‘강박적인 도덕주의자’로 칭하며 끊임없이 삶의 변화를 시도했다. 글을 쓸 때마다 수십 편의 초고를 썼다는 일화는 그녀가 얼마나 완벽한 글쓰기를 추구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평생 100권 넘게 썼다는 일기장은 자기 삶의 집행자이자 기록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을 방증한다. 이 일기장들은 그녀가 타계한 후 책으로 출간됐다.
‘타인의 고통’ 부록에 실린 글에는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미국 사회를 향해 던졌던 그녀의 일갈이다. 대중을 부추기고 속이고 슬픔을 조종하는 게 임무인 위정자들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며 손택은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