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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 결과 보고서

기사입력 2020-07-29 10:00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처음 그곳은 겨울을 지낸 황량한 벌판이었다. 생명이 살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노고지리가 높이 떠 봄을 알릴 즈음 흙더미 위로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초보 농사꾼인 나는 서울 도심 한편에 손바닥만 한 땅을 얻어 주말농장 간판을 내걸었다. ‘그린 텃밭’(Green family garden). 욕심껏 씨를 뿌렸다. 알이 굵은 대저 토마토, 노랑 빨강 방울토마토, 청양고추와 아삭이고추, 파프리카, 오이, 가지, 땅콩, 딸기, 쑥갓, 근대, 아욱, 깻잎 등등 겨자씨만 한 씨앗들을 뿌리고 모종도 심었다. 가지는 씨눈을 중심으로 서너 쪽으로 쪼개어 나누어 심었다.

(사진 박종섭 )
(사진 박종섭 )

메마른 땅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흙으로 덮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여기저기서 싹이 트기 시작했다. 흙을 머리로 이고 살포시 파란 싹을 내민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여다봤다. “야! 너희들 참 대단하다. 어찌 이 무거운 흙을 비비고 올라왔니?” 연신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를 듣기라고 하는지 새싹들은 잎을 하나둘 더하기 시작했다.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자연은 참으로 위대했다. 태양은 하루도 빠짐없이 열기를 불어넣어 줬고, 바람과 구름은 어린 싹이 폭염에 다칠세라 쉴 새 없이 그늘을 만들어 식혀줬다. 이따금씩 소나기도 생명수 같은 비를 시원하게 뿌리며 지나갔다. 잎과 줄기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사람도 그렇지만, 식물들도 저 혼자 크는 게 아니었다. 주위에 모든 것이 힘을 보태어 한 생명을 키워냈다.

어느 정도 자라 꽃을 피울 때는, 나비와 벌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벌이 왔다 간 자리엔 어김없이 조그만 열매가 맺혔다. 가지와 오이는 풍선에 바람 불듯 쑥쑥 자랐다. 채소는 일렬종대로 무성하게 잎을 피웠다. 실컷 먹고 이웃들에게 나눠줘도 그다음 날 또 자랐다. 큰 토마토는 어른 주먹보다 커지면서 빨갛게 익었고, 방울토마토는 전깃줄에 제비들 앉아 있듯 다닥다닥 붙어 익어갔다. 태양은 더욱 센 입김을 불어넣어 깊은 단맛을 만들어줬다. 익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그러나 감자는 달랐다. 닭이 알을 품고 있듯 한 번도 익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땅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수확시기를 알게 됐다. 흙을 파헤치자 감동이 밀려왔다. 어미 감자는 자신의 몸을 내어 새끼들을 키워내고 생명을 마감했다. 줄기마다 크고 미끈한 감자가 대여섯 개씩 달려 있었다. 자연이 신비스러웠다.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사진 박종섭 시니어기자 )

풍성한 수확의 날, 주말농장에는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 열매들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주위의 도움이 있었는가? 텃밭을 가꾸며 아내와 나는 자식들처럼 쑥쑥 자라는 식물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간이 섭취하는 양식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도 알게 됐다. 밀레의 그림 ‘만종’에서 저녁 종소리에 기도를 올리는 부부처럼 겸손함도 저절로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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