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마지막 날 오후 서울에서 친구 부부와 함께 태백으로 출발했다. 함백산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와 아침을 먹고 태백산을 오르기로 했다.
5년 전 태백산 해돋이를 보려고 오를 때 체감온도 영하 30도의 맹추위와 맞닥뜨려 카메라 한번 꺼내지 못하고 내려왔던 기억이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태백의 주목나무 눈꽃이 아직도 눈에 선해 다시 마주할 그 절경에 마음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는 내내 차에서 바라본 풍경엔 눈은 없었다.
3시간 반 남짓 달려 땅거미가 내려올 때쯤 태백에 도착했다. 저녁 6시가 가까운 시간에 태백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민박촌으로 올라갈 요량으로 한우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태백실비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은 연탄불에 구워 먹는 한우 갈빗살이 소문난 집이다. 한우 갈빗살을 시켰다. 때깔 좋은 한우가 뚝딱 한 상 차려졌다. 반쯤 불이 붙은 연탄이 등장하고 이어 석쇠에 올려진 태백 한우의 지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미 눈과 가슴은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고소한 한우의 맛에 취해 세 명이 5인분을 먹고도 모자라 추가로 1인분을 더 시켰다.
2020년 새해를 여는 첫날, 어둠을 헤치고 달려간 발걸음 아래 함백산이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 불어오는 칼바람에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간간이 눈발이 흩날리는 동녘 하늘에서 붉게 물들어오는 미지의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예로부터 민초들이 소원을 빌었다던 함백산에서 우리 일행은 경자년 첫날의 일출을 간절히 기다렸다.
흩날리는 눈발이 카메라 렌즈에 올랐다. 연신 렌즈를 닦아내며 “과연 경자년 첫날의 일출을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오르락내리락 급하게 흘러가는 구름 너머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하던 경자년 (庚子年)의 첫 일출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7시 40분쯤, 어스름 능선 용광로처럼 펼쳐진 붉은 주단 가운데로 연붉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햇무리를 동반한 해가 서서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눈발이 휘날리는 와중에도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경자년의 첫날 일출!
숨이 멎을 듯 멋진 일출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아침을 먹고 태백산을 오르기 위해 유일사 쪽으로 이동했다. 초입을 지나 유일사 쉼터에 도착하니 다리에 전해지는 무거운 하중으로 온몸이 뻐근하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등에서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할 때쯤 주목 군락지가 나타났다. 천 년 주목에 내려앉은 눈꽃이 그야말로 환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 역시 태백산이로구나!” 쉴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굽이굽이 눈 터널을 오르다 보니 장
군봉 옆으로 천제단이 성곽처럼 불쑥 나타났다. 사람들이 천제단 앞에서 허리를 굽혀 무언가를 빌고 있었다.
태백산 표지석 앞에는 인증샷을 하려는 인파가 줄을 서고 있었다. 인증샷을 마치고 하산을 시작했다. 유일사 쪽에서 출발한 지 5시간여 만에 다시 유일사쪽으로 내려왔다.
광부들이 즐겨 먹었다던 태백 닭 물 갈빗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광부들이 갱에서 작업하면서 마셨던 탄가루를 청소하기 위해 즐겨 이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뜨끈뜨끈한 국물에 뭉게뭉게 올라오는 김 서린 닭갈비는 얼었던 몸을 이내 녹여주었다.
경자년 첫날에 찾은 함백산 일출과 태백산 눈꽃 산행이 올 한 해를 잘 살아내는 힘으로 작용해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