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튜브 방송이 있다. 바로 수어를 통해 금융 지식을 알려주는 ‘윤쌤의 쉬운 금융 수어’이다. 신한은행에서 27년 동안 일하고 퇴직한 윤현숙 씨가 제2의 인생을 열며 운영을 시작. 과연 이 독특한 콘텐츠는 어떤 연유로 출발하게 된 걸까? 이런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걸까? 목소리에서부터 훈훈한 온기가 전해지는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현숙 씨는 1972년생으로 1991년 3월에 조흥은행에 입사했다. 그 후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 통합해 상호를 신한은행으로 변경했고, 그녀는 27년 동안 신한은행 지점 VIP실에서 일하며 차장직까지 올랐다. 그리고 2018년에 희망퇴직을 했다.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썩 건강하지는 않았어요. 특히 두통이 심했죠. 그게 심해지더니 아무 증상 없이 갑자기 정신을 훅 잃어버리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엎드려 있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나 일하는 날이 많았죠. ‘오늘은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때도 있었는데, 다행히 회사에서 명퇴 기회를 주셔서 선택하게 됐죠.”
VIP실이라고 하면 흔히 편한 업무를 하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그녀는 나름의 지독한 전쟁을 치렀던 셈이다.
“사직서는 컴퓨터로 작성해서 제출하면 됐어요. 다 쓰고 나니 ‘누르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내용의 팝업이 뜨더라고요. 바로 제출을 눌렀죠.(웃음)”
그녀는 퇴직하자마자 바로 수어 학원에 등록했다. 수어(手語)를 배워 청각·언어장애인들을 돕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2014년에 일했던 지점에는 장애인 고객이 많이 왔어요. 그들을 보다 보니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군요.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보고, 자신의 업무를 다 처리하지 못하고 가는 안타까운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죠. 그때마다 내가 수어를 할 줄 알면 해결해줄 수 있을 텐데 싶었죠.”
수어는 당연히 인사부터 배웠다. 처음이라 실수도 많고 아직 서투르다. 하지만 태어나서 경험하는 가장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수어를 배우는 그녀가 유튜브와 만나게 된 것은 노사발전재단 금융센터에서 유튜브 크리에이터 과정을 수강하면서부터였다.
“수어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법으로 뭐가 있을까 싶었죠. 그러다가 나에겐 금융 지식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유튜브에 많은 금융 정보가 있지만 수어로 알려주는 동영상은 없었어요. 내가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죠.”
은행에서 27년 동안 VIP 고객을 상대한 만큼 그녀의 금융 지식은 프로페셔널하다. 은퇴설계전문가, AFPK, 부동산펀드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변액보험·손해보험·제3보험·생명보험 대리점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일반인들도 보이스 피싱이나 금융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청각·언어장애인들은 금융 정보를 잘 알 수가 없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어서 금융 정보를 얻기 힘들고, 은행에서도 적극적으로 케어할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사실 일을 그만둔 다음에는 다시는 금융 일을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가진 지식이 도움이 된다면 전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금융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얻어 청각·언어장애인들이 사기를 안 당하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손끝으로 나눌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2인생을 발견한 윤현숙 씨. 그녀는 알기 쉬운 금융 수어가 세상을 이롭게 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잘해서 하게 되는 일은 없다”는 말에 용기 얻어
자신의 지식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마음으로 1인 크리에이터를 시작한 윤현숙 씨에게 제2의 인생을 살면서 달라진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죠. 그리고 퇴직한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여행 얘기만 하는데, 여행은 남편이 퇴직하면 같이 가기로 했어요. 그동안은 봉사할 수 있는 수어 실력을 탄탄하게 쌓을 생각이에요.”
단순한 제스처 혹은 손짓이라는 의미가 강한 수화(手話)보다 언어적 역할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있는 수어는 2016년 수화언어법이 통과되며 언어로 인정됐다. 이후 방송뿐만 아니라 관공서의 연수, 세미나 등은 물론 동네 주민센터에서 회의를 할 때도 수어 통역사 배치가 필요해졌다. 윤현숙 씨는 수어 통역을 할 때 단순히 기계적으로 언어만 번역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청각·언어장애인들의 문화는 독특해요. 그분들에게 좀 더 쉽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등에 해박해야 해요. 이 모든 걸 꿰뚫고 있어야 그분들을 잘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그녀는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말 많이 고민해보라”고 조언했다. 수어 통역사가 애초의 바람이었다면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어찌 보면 과감한 도전이었다. 그녀는 유튜브 동영상 제작 방법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잘해서 하는 것은 없다, 계속 깨지면서 하는 거다”라고 한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서툴러도 빨리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앞으로는 금융을 비롯해 재무설계 상담도 하고 싶어요. 자산가들의 금융이 아니라 파산 직전에 처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드리면서 그분들의 마음까지 보듬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