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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빚투성이

기사입력 2018-04-21 16:14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드디어 오늘이다! 대망의 아들 결혼일이다. 자그마치 36년을 기다려왔다. 녀석은 아들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이젠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 날이다. 아울러 한 여자의 지아비가 되는 실로 거룩한 day다.

새벽부터 쏟아지는 빗줄기로 말미암아 심란한 마음까지 가세하면서 몇 번이나 잠을 깼다. 대저 오늘처럼 경사가 있는 날엔 날씨가 좋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다. 허나 세상사라는 건 마음대론 안 되는 법이다.

따라서 쏟아지는 폭우 역시 제어가 불가능함은 물론이다. 차라리 긍정의 마인드로 치환하자고 다짐했다. 오랜 가뭄을 끝내려는 단비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흡족으로 바뀌었다. 무릇 비가 내리면 대지는 촉촉해지면서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이는 본디 비가 생명의 원천인 까닭이다. 그래서 필자도 그리 생각했다. 비를 맞고 불끈 일어설 푸르른 새싹들처럼 아들부부 역시 늘 그렇게 씽씽하라고…. 아들의 결혼 날짜가 확정된 후 모바일 청첩장까지 도착한 건 얼추 한 달 전이다.

이를 지인들에게 종이 청첩장과 병행하여 보내드린 건 보름 전부터였다. 누군가처럼 자녀를 결혼시키면서도 청첩장, 축의금, 화환이 없는 ‘3무(無) 결혼식’으로 치른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봉의 소시민 입장에서 그 같은 도발은 사실상 도전 자체가 힘들다. 십시일반의 애틋함보다는 반대급부의 졸렬한 개념으로 그동안 ‘투자’해온 각종 관혼상제 시 들어간 축의금과 조의금 따위가 상당하다. 하여 자녀의 결혼식을 빌미(?)로 이를 벌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를 기화로 엄청난 재화를 축적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가뜩이나 쪼들리는 형편이기에 지인들의 축의금은 사실상 결혼비용의 충당에 큰 도움이 되는 건 현실이라는 팩트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일 뿐.

어쨌든 필자 역시 아들의 혼례를 나름 ‘3무 결혼식’으로 정했다. 바로 예단, 주례, 폐백을 과감히 생략하기로 한 것이다. 내처 성혼선언문 낭독까지 필자가 할 예정이다. 통장으로의 축의금 입금은 사나흘 전부터 시나브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는 어제 절정에 달했는데 마치 구름처럼 몰려오는 듯한 파죽지세의 모양새 다름 아니었다. “꼭 가봐야 하는데 미안해요. 집에 일이 있어서 불참함을 이해 바라며 성의 표시했습니다.” 어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빚인데…!’ 상식이겠지만 축의금은 다 갚아야 할 ‘빚’이다. 고로 축의금(조의금 역시)을 받는 순간, 빚쟁이로 전락하는 셈이다. 빚쟁이는 그 빚을 변제하기까지는 원천적으로 채무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풍진 인생을 사노라면 다들 그렇게 빚쟁이의 궤(軌)를 점철하는 것이지 싶다. 사람은 누구라도 이 세상에 나올 땐 어머니의 배를 빌려 나왔다. 따라서 어머니는 자식에게 있어 평생을 갚아야 할 대상의 ‘빚쟁이’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한다. 막상 자녀가 출생하고 나면 반대로 어머니(아버지)는 비단 등가성(等價性)의 확장논리가 아니더라도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전생의 빚쟁이’라는 말처럼 오히려 평생 빚진 사람으로 바뀐다는 사실의 고찰이다.

자식의 일이라면 그야말로 눈먼 사람처럼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야만 한다는 절대적 명제에 함몰되게 만든다는 게 이런 주장의 방증이다. 이러한 개념의 일환으로 오늘 결혼식을 마친 뒤 우리 집안 식구로 들어설 며느리 역시 따지고 보면 사돈댁에서 보낸 ‘빚’이다.

빚은 갚으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필자 통장으로 송금한 지인과 친구들의 축의금은 그와 유사한 사례 발생 시 도로 냉큼 갚으면 된다. 반면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는 어쩜 살아생전 내내 변제해야 마땅하다는 빚의 설정까지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그 빚을 단박에 갚을 재주는 없다. 다만 너른 아량과 배려로써 차차로 갚아나가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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