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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의 힘

기사입력 2018-03-13 16:53

인류학강의 시간. 교수님은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맑았다. 깊은 표정, 차분하고 박식했다. 무채색의 옷차림으로 여대생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큼 충분히 멋졌다. 미팅을 즐기느라 책을 잘 읽지 않는 우리에게 말했다.

“하버드에 적응하느라 긴장을 풀지 못했어. 읽으라는 책이 얼마나 많은지 체력과의 싸움이었지. 다 읽지 못하고 가는 날은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어. 본토인들은 그냥 읽기만 하면 되지만 단어까지 찾아가며 읽느라 시간이 더 걸렸거든. 또 강의 중 말을 놓치기라도 하면 다른 학생의 노트까지 빌려야 했어.”

“시험기간에는 수염을 못 깎아 원시인처럼 털이 덥수룩했지. 열심히 한 보람이 있어 시험 성적이 좋았는데 그런데 학기 말에 나온 성적표는 예상과 달리 B학점이었어. 교수면담을 신청하고 항의하자 교수님이 말했어.”

“자네는 시험성적은 좋지만, 강의 시간에 다른 학생이 질문하고 답하는 동안 한 마디도 안 하고 듣기만 하였네. 그래서 자네에게는 A 학점을 줄 수가 없었네.

언젠가 히브리대학 도서관 풍경을 TV로 보았다. 시장처럼 떠들썩했다. 두세 명씩 함께 앉아 손짓까지 섞어가며 질문하고 답하는 모습이 일반적인 도서관 풍경과는 달랐다. 그것은 유대인 전통학습방식인 ‘하브루타’였다.

우정 또는 동료를 뜻하는 하비루타는 학습파트너를 의미한다. 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상대방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지식을 새롭게 정리하는 단계를 거친다.

어려서부터 경전 토라를 외우고 자기 해석을 표현하고 질문하는 교육을 통하여 정확한 답을 이끌어내는 훈련을 한다. 강의 중에도 교수에게 질문하고 답이 미흡하면 만족할 만한 답이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질문을 되풀이한다.

질문이나 토론에 금기는 없다. 때로는 큰 목소리로 의사를 표현하지만, 생각의 차이로 받아들일 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누구든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권리를 갖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발언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에둘러 설명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자기 생각을 직선적으로 밝히는 유대인의 독특한 습속이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끊임없이 질문했다.

“저게 뭐야?”

“음, 새야.”

“새가 뭐야?”

“하늘을 나는 짐승이야.”

“짐승이 뭐야?”

대답하기 난감한 경우. 참을성 있게 설명을 다 하기보다 화제를 돌린 적도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흥미롭고 또 마술처럼 느꼈을 천진한 아이에게는 아쉬운 교육 방법이었다.

우리는 예의를 우선순위에 두어 질문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래서 좀 미진해도 그냥 넘어가는 것을 오히려 미덕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이제 아이를 다시 키울 기회가 있다면 ‘하비루타’식으로 가르쳐보고 싶다. 다양한 의견, 나와 다른 목소리들, 불편하더라도 경청한 후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공동체가 유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직성과 획일성은 허약하다. 다양성과 유연성에 힘이 있다. 그것은 금기 없는 사유, 거침없는 질문과 치열한 토론에서 시작된다.

머리로 아는 것과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을 글로 나타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마음에 담긴 생각을 자유로운 토론을 통하여 가장 적합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최선의 가치에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토론을 통하여 어떤 경우에도 감정 상하지 않고 답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멋진 체험이 될 것 같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교육인 것 같다. 듣기보다는 자기말만 하는 신문 정치면을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적어 본다. 정치뿐이랴 모든 분야에 필요하다. 토론을 통해 서로 균형을 잡아가는 합리적인 접근방식. 그것이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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