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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에 가장 무서운 것은 ‘외로움’

기사입력 2018-03-05 11:05

노후에 가장 무서운 건 뭘까? 어렸을 땐 호랑이가 가장 무서웠고 이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귀신이 무서웠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상상 속의 존재가 귀신이다. 구체적으로 누가 봤다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저 소설 속에서, 영화 속에서 본 것이 전부일 뿐이다. 실체가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시골집에 사셨다. 자식들은 다 나가 살아 곁에 있는 자식도 없었다. 자식이 여섯이나 되어도 함께 사는 자식이 없으니 시골 큰 집에 어머니 혼자 계셨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두 분이 계셔서 그런지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는 방을 세놓으라고 말씀드리면 “방이 몇 개는 있어야 자식들 오면 엉덩이 붙일 곳이라도 있지” 하셨다.

그런데 집이 오래되어 여기저기 낡아 기둥도 삭아 있었고 모서리의 아귀도 맞지 않았다. 창문 틀도 안 맞아 바람이 들어오기도 했다. 큰 고장이야 없었지만 자질구레하게 손볼 곳도 많았다. 낡은 집이라 바람이 세게 불면 창문도 흔들리고 가끔은 서까래도 삐걱거렸다. 두 분이 사셨을 때는 별일 아닌 거로 넘겨버렸을 일이지만 혼자 큰 집을 사신 뒤로는 별별 생각이 다 드셨으리라. 도둑이 들거나 외부 침입자가 들어와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소리가 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셨을 것이다. 누구든 생각이 한쪽으로 몰리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되는 법. 예민하신 어머니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식들이 내려가면 어머니는 무섭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그러면서도 또 사람이 그립다고도 하셨다. 속수무책의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시골집을 떠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무서워 못 살겠다고 막내딸에게로 가셨다. 자식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생업을 포기하고 내려가 같이 살아 드릴 수도 없는 처지였다. 기껏 드릴 수 있는 말은 “어머니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요새 귀신이 어디 있어요?”라는 말뿐이었다. 어쩌면 자식들의 무관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결국 시골집을 포기하셨다.

어머니가 시골집을 떠나시고 몇 해 시골집은 비어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마당 가득 망초며 엉겅퀴 그리고 억새 등 각종 잡풀이 무성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풀씨들은 계단이며 처마 밑까지 빈틈없이 들어와 자랐다. 사람이 살던 집 같지 않았다. 썰렁해 보이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골집은 점점 황폐해져갔다.

그래도 넓은 시골에서 쾌적한 공기를 마시고 편히 사시기를 바랐는데 어머니는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 그것이 가장 힘드셨던 것 같다. 무섭다는 말씀은 어쩌면 그립다는 말이었으리라. 그것을 자식들은 몰랐다. 자식들은 고향 시골집이 거의 폐허가 된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가 좁은 단칸방에서라도 자식들과 함께 지내고 싶으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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