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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영화 ‘1987’

기사입력 2018-01-12 10:33

필자가 본 한국 영화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수작이다. 연쇄 살인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추격자’도 수작으로 꼽고 있었는데 영화 1987에서도 추격자의 명배우 김윤석과 하정우가 출연했다. 장준환 감독 작품이다. 네티즌 평점이 9.5점으로 필자의 평점과 비슷하다. 현재 예매 순위 2위권을 달리고 있으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데 더 가치가 있다.

이 영화는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과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군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칫 다큐멘터리의 딱딱함으로 지루할 뻔한 이야기를 숨 가쁘게 잘 그려냈다. 로맨스나 곁가지가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여러 광주 민주화 운동 영화들보다 스토리는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 보자는 단순한 스토리를 어지간한 스릴 넘치는 영화보다 잘 끌고 나갔다.

고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 사건은 그 당시 상황에서는 그냥 넘어가도 모를 일이었다. 군부 독재의 하수인들이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있을 때였다. 심지어 언론도 검열을 받으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용기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시체를 화장해버리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시신 부검을 고집한 검사, 고문치사를 증언한 의사, 진범이 더 있다는 증언을 전달한 교도관, 그리고 이를 천주고 정의구현사제단까지 전달한 재야인사와 평범한 대학생, 그리고 정의구현 사제단의 결정적인 성명문 발표와 기자들의 용감한 보도 등이 모두 어렵게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영화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와 더불어 이한열 군 스토리도 같이 엮어 냈다. 영화가 로맨스로 치우치면 사실성이 떨어지지만, 그 나이에 있을 법한 최소한의 로맨스로 스토리를 엮었다. 그래서 더 전율을 느끼고 눈물이 났던 모양이다.

당시 무고한 대학생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던 풍토, 언론까지 장악하고 무력을 휘두르던 군부 독재의 시대는 얼마 전 촛불구호의 구호였던 “이게 나라냐?”를 연상하게 한다. 군부독재에 항거하면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5년 전 민권 변호사 노무현을 그린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당시 1천1백만 관객을 동원하여 한국 영화 흥행 11위를 기록한 영화이다. 여기서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나온다. 노무현 변호사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거리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정에 섰는데 당시 부산 변호사 145명 중에 99명이 변호인으로 나섰다. 이 영화의 성공은 영화 ‘1987’의 흥행 성공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한국 민주화의 역사는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진 것이다. 한 마디로 드라마틱하다. “데모하는 대학생은 공부하기 싫어 정부에 반항하는 것이다”라는 편견도 있었다. 그러나 순수한 그들의 정의가 아니었으면 군부 독재는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필자의 대학시절은 유신 독재에 반대하며 시위를 하기는 했으나 학교가 휴학으로 폐쇄되는 바람에 시위도 제대로 못했다. 1987년에 필자는 한창 직장생활에 몸담아 학생 시위와는 떨어져 있었다. ‘무기력한 넥타이부대’라며 힐난하던 대학생들의 지적에 지금도 낯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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