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부터 온갖 정성과 수많은 땀으로 가꿔 수확을 기다리며 희망에 부풀었던 볏논이 간밤에 난장판(사진)으로 바뀌어 있다. 간밤에 회오리바람이 이곳 논에 심하게 일었나 보다. 주변의 논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유독 한 쪽 논만 익어가던 벼 포기가 이리저리 쓰러져 올곧은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것도 하늘의 뜻일까? 필자가 사는 동네의 주변 논에는 요즘 벼가 익어가고 있다. 위도가 북쪽이어서 가을걷이가 조금 일찍 시작된다. 가을도 일찍 온다. 볏논의 벼가 꼿꼿이 이삭을 피어올린다. 연둣빛에서 황금색으로 변하면서 하나 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한낮의 따가운 햇볕을 머금고 알차진다. 이 순간의 기쁨을 위해 농부는 이른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땀방울을 흘렸다. 농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이제 남은 것은 흘린 땀방울로 결실될 벼를 거둬들이는 추수만 남겨두었다. 진인사대천몀의 순간에 이르렀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벼 알이 하나둘 알차게 익어가며 농부의 마음을 부풀게 하였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 만난 들판의 벼논의 상황이 확 바뀌었다. 여러 논 중에서 한 논배미의 벼가 난장판이 되어 있어서다. 모두 잠 든 사이에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하늘로 올라갔나 보다. 한창 익어가던 벼 이삭이 쓰러지고 꺾어지고 넘어졌다. 어느 부분은 곱슬머리처럼 배배 꼬이기도 했다. 방향도 일정하지 않게 헝클어졌다.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농부의 마음이 보인다. 백로 한 마리 농부의 마음을 위로나 하듯 쓰러진 벼 틈새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장의 사진에 이 이야기를 담았다.